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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정당 리브랜딩의 방향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

1992년 클린턴 대통령 탄생은

美민주 정책·세대 변화의 성공

韓 보수도 본원적 가치 지키되

참신한 콘텐츠·인재 키워내야





의회선거에서 정당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수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유권자의 정당일체감, 대통령이나 수상 등 행정부 수반의 지지율, 선거 당시의 핵심 이슈, 돌발적인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개별 정당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거나 타개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요인들도 있다. 열린 눈과 귀가 필요한 이러한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에게 정당이 호소하려는 메시지의 콘텐츠, 그리고 그 메시지의 전달자와 전달 방식일 것이다. 비호감의 옛 허물을 벗고 새로운 정책 콘텐츠를 통해 유권자에게 참신하고 유능한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다시 보여 주는 것, 이것을 정당 리브랜딩(party rebranding)이라 부른다. 유권자의 정서를 면밀하게 읽으면서 리브랜딩에 성공하는 정당은 유권자 선택의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유권자는 외면한다.

성공한 정당 리브랜딩의 사례를 하나 보기로 하자. 빌 클린턴의 미국 민주당 이야기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취임 이후 적극적인 규제혁파와 법인세 감면을 추진했다. 대외적으로 구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군비경쟁을 재개해 신냉전시대를 열었지만 당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베트남전 이후 위축된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돼 1984년 재선에 성공했다. 덕분에 공화당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때까지 12년간 백악관을 지킬 수 있었다.

1984년 대선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후보와 맞붙어 득표율에서 58.8% 대 40.6%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그 결과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승리해 전체 538명 가운데 525명의 선거인을 차지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좌절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좌절과 시련의 시기에 탄생한 조직이 1985년 출범한 ‘민주당 지도자 협의회(DLC)’였다. 여기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 중에는 당시 갓 40세의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 40대 초반의 조 바이든 델라웨어 상원의원 , 그리고 30대의 앨 고어 테네시 상원의원 등이 있었다.



이들은 민주당의 진보적 핵심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공화당으로 넘어간 백인 중산층을 되찾아오고자 절치부심했다. 급선무는 빈곤층의 종속문화와 정부의 재정적자를 고착시킨 현금지출성 복지제도에 대한 과감한 개혁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국판 제3의 길인 ‘신민주당(New Democrats)’이었고 이 새로운 노선으로 1992년 40대 기수 클린턴이 부시 대통령을 물리치고 전후 세대 최초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중도로 우클릭한 민주당은 뉴딜의 본래적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비효율과 부작용을 제거한다는 새로운 정책 콘텐츠로 무장돼 있었다. 그들은 유권자에게 새롭게 다가섰고 그 결과 백인 중산층을 다시 민주당으로 끌어왔다. 클린턴 민주당의 사례는 새로운 정책 콘텐츠, 새로운 메시지 전달자와 전달 방식이 어우러져야 유권자에게 선택받는 정당으로 리브랜딩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민주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도로의 확장을 도모하는 정당의 정책변화는 결국 이런 새로운 콘텐츠의 전달자를 무대 위로 올려놓기 위해 세대교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정책변화와 세대변화가 항상 함께 가는 것은 아니나, 행위자가 바뀌지 않은 성공적인 리브랜딩은 어렵고 떠나버린 유권자를 돌려세우기는 더욱 어렵다.

지금 한국의 보수정당은 바닥부터 바뀌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결코 보수의 본원적 가치를 바꾸라는 요구가 아니다. 다만 자를 것을 자르고 엮을 것을 엮을 줄 아는 참신한 정책 콘텐츠의 전달자를 키워 보수의 가치를 좀 더 설득력 있고 유연하게 전달하라는 이야기다. 유권자는 이런 변화의 시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정당의 세대체질이 바뀌는 것만큼 신뢰할 수 있는 변화의 시그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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