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정권’의 폭주를 막았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검찰 인사 개입 논란이 불거진 검찰청법 개정안의 처리를 포기한 것은 여론이 거둔 민주주의적인 성과라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탈법정권’과 민중의 분노”라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이번 검찰청법 개정안 논란을 놓고 “여론이 이 정도로 거셀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투표율이 낮다는 점에서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극도로 높은 데다 시위 규모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1강 체제’에서는 수싸움으로 밀어붙일 것이란 무력감도 감돌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은 트위터로부터 시작됐다고 신문은 강조했다. 트위터 상에선 1명의 30대 여성 회사원이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란 해시태그를 붙이기 시작해 지난 8일부터 급격히 확산됐고 11일 오후 3시까지 총 59만개의 계정이 이 같은 항의에 참여했다. 급기야 전직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 간부들도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내며 이번 개정안이 검찰 인사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지탄했다.
신문은 이번 분노의 양상이 마치 2011년 중동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아랍의 봄 당시 독재 정권에 소리를 지르지 못한 채 계속 억압됐던 민중이 소셜미디어에 결집했다”면서 “그 움직임이 저명인이나 유력자, 기존 미디어에 파급되면서 거대한 불덩이가 돼 튀니지나 이집트의 독재 정권을 파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아베 정권의 ‘독재적’ 정치 기법이 중동과 유사하다고도 비판했다.
신문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론이 정치를 움직이게 하는 민주주의의 실천이 ‘뉴 노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니치는 “이번 일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이를 위해 검찰청법 개정안은 유보하지 말고 정년연장 특례규정을 삭제하는 등 철저하게 손질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반대 여론에 밀려 포기한 검찰청법 개정안은 내각이 인정하면 검사장이나 검사총장(검찰총장에 해당) 등의 정년을 최대 3년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아베 총리는 이번 정기국회 내 개정안의 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검찰청법 개정안 추진으로 아베 정권은 역풍을 맞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16∼17일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33%를 기록해 지난달 18∼19일 조사한 것보다 8%포인트 하락했다. 교도통신은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아 아베 정권이 법안 표결 방침을 전환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국회에서 주목을 받은 법안의 처리가 보류 상태에 빠짐에 따라 총리의 정권 운영에 타격이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아베 정권이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올해 가을 임시국회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과 함께 재차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검찰청법 개정안 국회 처리 보류에 대해 “큰 한 걸음이지만, 상대는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정권 자의적으로 검찰 간부의 정년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시도를 그만두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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