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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익산]'묻어둔 서동설화' 꺼내니 '묻고픈 서동설화' 되었네

[전북 익산 역사탐방…'미륵사지 석탑']

서동·선화의 러브스토리 무대

석탑 복원하며 나온 유물 속엔

서동설화와 다른 내용 밝혀져

차로 15분 '왕궁리유적'이르면

무왕의 '백제 부활 숨결' 한가득

원도심은 근현대사 유적 품어

하루 묵으며 천천히 둘러보길

역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진실들을 하나씩 꿰어 맞추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은 여행의 의미와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5월의 끝자락에 찾은 전북 익산으로의 여행길이 바로 그랬다. 익산은 서동(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인 서동설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 곳으로의 여행은 역사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과정인 셈이다.

미륵사지 내 서탑(사진 왼쪽)이 최근 복원을 마치면서 동서로 2개의 석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금마면 미륵사지에서부터 출발한다. 미륵사지는 백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 있던 절터다. 미륵사는 지난 17세기께 폐사돼 지금은 그 터만 남았지만 미륵산(옛 용화산) 아래로 펼쳐진 사찰 터의 규모만 봐도 당시 백제 불교의 위용을 짐작하게 한다. 미륵사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왕과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미륵산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무왕에게 이곳에 사찰을 짓고 싶다고 간청해 연못을 메운 뒤 미륵사를 지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미륵사지 서탑이 복원공사를 마친 모습. 서탑 복원작업은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부분을 최대한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2009년 미륵사지에 남은 서탑(국보 제11호)을 복원·해체하는 과정에서 미륵사를 창건한 인물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인 좌평(佐平)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리봉영기가 발견되면서 설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선화공주가 설화 속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과 무왕이 여러 명의 왕비를 거느렸을 것이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미륵사의 건립 연도와 발원 주체가 명확히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미륵사지에 건립된 국립익산박물관 내에 전시된 서탑 내에서 발굴된 유물.


현재 사찰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두 개의 석탑이 이곳이 미륵사 터임을 증명하고 있다. 본래 미륵사에는 가운데 대형 목탑을 중심으로 좌우로 1개의 석탑까지 총 3기의 탑이 세워졌는데 중앙 목탑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최근 2기의 탑 중 서탑이 복원을 마치면서 앞서 복원된 동탑까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갖췄다. 미륵산과 그 아래 석탑을 보고 있자면 1,400년 전 백제의 휘황찬란했던 호국사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서탑 복원이 마무리되면서 1월에는 국립익산박물관도 함께 문을 열었다. 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991호)와 사리봉영기 등 석탑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국보와 보물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은 왕궁리유적 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다.




다음으로 둘러볼 곳은 왕궁리유적이다. 미륵사지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은 백제왕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 이름도 왕궁면이다. 무왕이 일찍 즉위한 혜왕·법왕 이후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수도를 부여에서 익산으로 옮겨왔다는 천도설을 뒷받침한다. 왕궁의 외곽 담장과 왕이 정사를 돌보던 정전건물지, 정원자, 금·유리·동을 생산하던 공방지, 화장실 유적 등이 발견됐다.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해 지금도 복원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유일하지만 나지막한 언덕 위 왕궁터로 올라서면 익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무왕이 왜 이곳으로 천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봄이면 오층석탑 앞 왕벚나무에 벚꽃이 만개하고 겨울에는 왕궁터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고즈넉함을 더한다고 한다.

쌍릉은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다.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왕궁리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중간쯤 쌍릉이 있다. 쌍릉은 말 그대로 2개의 능이 200m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는데 북쪽의 대왕릉과 남쪽의 소왕릉으로 이뤄져 있다. 대왕릉에 비하면 확실히 소왕릉이 작고 아담해 각각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능 주변으로 조성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설화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기에 좋다. 이외에도 주변으로 서동공원과 한반도를 닮은 금마저수지, 마한에서 백제까지 역사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마한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금강 자전거길 옆 용안생태습지공원은 노을이 질 때 사진 찍기 좋다.


백제시대 유적을 중심으로 익산을 둘러봤다면 이제는 익산의 근현대사를 둘러볼 차례다. 동부권을 벗어나 서부권으로 넘어가면 금강 줄기를 따라 용안생태습지공원, 전통한옥과 돌담길을 품은 함라한옥마을, 해넘이 명소인 웅포곰개나루,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되는 교도소세트장, 성당포구 바람개비길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익산 남쪽인 원도심권으로 들어가면 익산의 100년 근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익산근대역사관과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가장 오래된 간이역 춘포역사 등이 있다. 익산이 생각보다 넓어서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꼬박 하루 일정도 부족하다. 권역별로 나눠 한 곳에 집중하거나 하룻밤 묵으며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글·사진(익산)=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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