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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개미다운 투자법

코로나19 급락장서 푼돈 만진 개미

대박 꿈 꾸며 차원 다른 ETN 발 담가

모르는 분야 넘봤다가 큰 코 다칠 것

‘나 쓰는 물건 남도 쓰나?’ 투자 첫걸음





“30년 가까이 경제 현장을 누빈 기자가 그런 것도 몰라?” 친구가 힐난조로 얘기한 것은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에 대해 좀 아니?”라는 질문에 “모른다”며 한마디로 잘랐기 때문이다. 그는 끝내 규모를 밝히지 않은 상당액의 자금을 원유 ETN에 투자해놓고서는 좌불안석이었다. 기자라면 다 알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좀 창피했다. ETN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인구에 회자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니. 자책감은 며칠 뒤 자산운용 현장만 30년 가까이 누빈 증권 전문가를 만난 뒤에야 비로소 사라졌다. 20년 넘게 사귀면서 지금까지 나의 재정고문 역할을 해주고 있는 이 전문가는 “ETN 좀 알아?” 하는 나의 질문에 “그 상품의 구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서울 여의도에서도 손에 꼽을 거야. 나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동학개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마구 팔아 주가가 급락하자 기회가 왔다며 매수에 적극 가담한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 동학개미는 나의 재정고문조차 놀랄 정도로 강하게 버티더니 끝내 얼마간의 돈을 벌기까지 했다. 외환위기건 금융위기건 주가가 날개 없이 추락할 때면 개미는 울면서 팔았고 외국인은 웃으면서 사들였다. 개미가 급락장에서 돈을 번 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번 코로나19 증시는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과거 급락장에서 두려운 마음에 주식을 팔았다가 탈탈 털렸다는 학습효과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문제는 동학개미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갔다는 데 있다. 푼돈 좀 손에 쥐자 충만한 자신감으로 사들인 상품이 원유 ETN이다. 잘만 잡으면 수익률이 하루 50%도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서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그들은 투자 전장에서 세운 공이 이미 높으니 족함을 알고 그쳐야 했다. 그들이 불쑥 발을 담근 ETN이라는 전장은 아무나 넘볼 분야가 아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는 언택트 사회가 앞당겨질수록 여기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 것이요, 그렇다면 삼성전자 주식을 사야 한다는 정도의 분석은 동학개미가 할 수 있다. ETN은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ETN의 구조를 잠깐이라도 설명할 수 있는 동학개미가 몇 사람이나 될까. 워런 버핏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투자의 기본은 아는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다.



오래전 가치투자로 유명한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으로부터 주식 투자로 돈 번 얘기를 들었다. 그는 어느 날 서울 양재천의 자전거도로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삼천리자전거 주식을 샀고 이른바 대박을 쳤다. 사람들이 잘 닦인 자전거도로를 보면서 자전거 탈 생각을 할 때 강 회장은 자전거가 잘 팔릴 것이라고 예측해 자전거에 투자했다.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는 2~3년 전부터 휠라 브랜드를 사달라는 아이들 성화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패션 감각과는 담쌓은 아저씨들이 좋아하던 브랜드를 1020세대가 갑자기 찾을 때 어떤 학부모는 옷이나 신발을 사줬지만 어떤 학부모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휠라 주식을 사들였다. 한물간 이미지로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휠라는 1020세대를 타깃으로 삼아 변신하는 데 성공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을 남도 사용하는가. 강 회장의 투자 첫걸음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삼천리나 휠라처럼 쉬운 투자는 지금도 가능하다. 코로나19 때문에 혼술족이 늘어나면서 하이트진로 주가가 올랐다. 얼굴 주름을 없애주는 주사를 맞을 때도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게 되자 주름개선 기기를 제조하는 클래시스 주가가 뛰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만 마시고 예뻐지고 싶은 사람은 미용주사에만 관심을 기울일 때 돈도 벌고 싶은 사람에게는 하이트진로와 클래시스 주가가 보인다. 오리는 오리로 살아야지 학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는 만큼 투자하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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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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