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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팬데믹에도 도시는 죽지 않는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 촉발

일부선 도시 종말 지적하지만

생산성 등 감안땐 가능성 적어

문제는 지도력 없는 '불량 정부'

파리드 자카리아




뉴욕시의 봉쇄가 풀리기 시작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솔직히 필자도 가슴이 설렌다. 도시의 기능이 위축되고, 다양한 행사가 취소된 탓에 뉴욕시는 한동안 예전의 활기를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봉인 풀린 도시를 바라보는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지난 석 달 간, 행인들의 발길이 뜸해진 뉴욕시는 거대한 건물군과 사통팔달의 도로만 덩그러니 남은 텅 빈 무대세트를 연상시켰다. 이제 그곳에 사람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업소들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했고, 거리는 자택대피령에서 풀려난 행인들로 붐볐다. 의무적 마스크 착용, 테이블 사이의 적정간격 유지, 점포 출입 인원 제한 등의 조건이 붙었지만, 사라졌던 도시 생활이 돌아온 것이다.

항간에 나도는 얘기를 모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뉴욕시를 비롯한 대도시의 사망을 알리는 조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높은 인구밀도로 말미암아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세균배양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직장인들은 굳이 사무실 근처의 인구밀집지역에 거주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원격화상회의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사무실’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릴 처지에 놓였다는 점 역시 도시의 종말을 논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그들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같은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14세기에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는 흑사병으로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중세 작가인 조반니 보카치오가 그의 저서인 ‘데카메론’을 통해 유럽인들에게 들려준 조언은 지금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를 떠나시오. 몇몇 친구들과 격리생활을 하다가, 가끔 저녁 시간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흥미로운 담소(중세판 넷플릭스 버전인 셈)를 나누시오.” 하지만 유럽의 도시들, 그중에서도 특히 플로렌스가 주도적으로 문예부흥기의 막을 연 것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돌림병이었던 흑사병이 물러간 다음의 일이었다.

1793년, 한 국가의 수도이자 당시 그 나라 도시 중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던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대표적인 메트로폴리스였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에 황열이라는 고약한 전염병이 번졌고, 도시 전체 인구인 5만 명 가운데 1/10에 해당하는 5,000명이 이 병에 걸려 사망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도심에서의 생활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시 외곽에 거주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이어갔다. 후일 그는 황열병에 관해 이렇게 썼다: “대다수 악마들이 선한 것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되는 수단인 것처럼, 황열병 역시 거대 도시들의 성장을 저지했다.”

비평가들은 이번은 다르다고 말한다. 신기술은 재택근무를 용이하게 만들고, 질병의 위험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을 것이다. 주민들의 ‘도시 탈출’을 점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버드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Triumpj of the City)라는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70년대 미국의 도시들이 암담한 미래와 마주했다고 지적한다. 국제분업을 가능케 한 세계화와 업무 자동화는 방직산업에서 해운업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했다. 자동차는 원거리 출퇴근을 용이하게 만든 지금의 줌보다 훨씬 중요한 획기적 신기술이었다. 전화서비스도 싸고 편해졌다. 여기에 인종폭동, 범죄와 관리부실 등이 겹쳐지면서 도시생활을 산산조각 낼 몰로토프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수명을 다한 것으로 여겨졌던 도시는 보란 듯 다시 돌아왔고, 금융에서 컨설팅과 헬스케어에 이르는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경제적 생명력을 찾아냈다. 팩스와 이메일, 비디오 컨퍼런스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단순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며 도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했다.

글레이저는 금융과 테크놀로지 산업의 경우 근로자들은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멘토로부터 그날그날의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서로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은 그보다 작은 대도시의 거주자들에 비해 평균 50% 이상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이 같은 관계는 근로자들의 교육 정도, 경험과 직종 등을 고려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별 노동자들의 지능지수까지 감안해도 결과는 같다.

팬데믹이 대도시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인구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뉴욕시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맨해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감염률은 다른 구역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미국 전체를 놓고 보아도, 인구 1인당 감염률은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외국도 거대 도시들이 바이러스에 놀랄 만큼 효율적으로 대처했다. 홍콩, 싱가포르와 타이페이는 모두 인구밀도가 높고 수백 만 명의 이용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루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은 대도시들이지만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놀랄 만큼 적다.(전체 사망 건수는 홍콩 4명, 싱가포르 25명, 타이완 7명이었다.) 불리한 환경에서도 이들이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의 덕택이었다. 다시 말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사스를 겪은 후 이들은 한결같이 의료와 위생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들 모두는 코로나19에 조기에, 공격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대응했다. 이제 그에 따른 보상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뉴욕시가 코로나19에 무참히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력 부재, 잘못된 우선순위, 엇박자 정책 등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뉴욕시의 쇠퇴를 초래했던 요인들이 또다시 한데 어우러진 탓이다. 이번에 뉴욕시와 다른 대도시들이 존폐위기에 처한다면, 그건 팬데믹과 테크놀로지의 탓이 아니라,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일관되게 도시와 국가의 쇠퇴를 초래했던 요인, 다시 말해 ‘불량한 정부’(bad government)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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