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의 기나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뽑은 한 소녀의 사연이 일본 사회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등교하지 못하고 집에만 박혀있는 이 소녀를 직장 문제로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혼모 A씨의 자책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1일 미야기현에 거주하는 한 가족의 이 같은 사연을 소개했다.
A씨는 지난 5월 어느날 가슴이 철렁한 일이 있었다. 딸이 머리카락이 빠졌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이 소녀는 휴교령이 오랜 기간 이어진 후 오랜만에 등교했더니 친구한테 이를 들켰다고도 A씨에게 말했다.
A씨는 조명을 밝히고 나서야 딸의 머리에서 동전 만한 구멍을 발견했다. 정수리 옆 털이 완전히 없어지고 흰 살갗만이 보였다. 주변 머리도 부스스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소녀는 뜻밖의 사실을 A씨에게 털어놨다. 3월 중순부터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데다 친구도 만나지 못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딸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아사히는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라고 표현했다.
A씨에 따르면 이 소녀는 학교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7시 이후에 집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특히 올해 신학기부턴 최고 학년이어서 신입생들을 돌볼 수 있다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휴교령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소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우직하게 집을 지켰다. 휴대폰이 없어서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A씨는 딸이 고백할 때까지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풀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딸을 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5월 황금연휴 무렵에 소녀는 저녁마다 집 마당으로 나와 A씨를 기다렸다. 돌아오는 시간이 날짜마다 달랐지만 소녀는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고는 도착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마중 나온 소녀의 머리에선 레몬향이 났다고 A씨는 아사히에 전했다. 이게 발모제에서 나는 향이었다는 건 딸의 빠진 털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딸의 머리가 빠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A씨는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고 한다.
A씨가 딸에게 집중할 수 없었던 데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감원 공포도 자리 잡고 있었다. A씨가 다니는 건축업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수주가 줄어들면서 감원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특히 평소에 자신이 아이 문제로 자주 휴가를 써왔기 때문에 더욱 감원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A씨를 사로잡았다. 끝없는 휴교, 늘어나는 지출, 해고의 불안 등으로 아이 돌봄에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제는 이 소녀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다. 머리에 구멍이 난 이후엔 보이지 않도록 머리를 묶어서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A씨는 “코로나19는 떠난 게 아니야.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휴교는 끝났다. 3개월은 정말 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일본에선 지난달 25일 코로나19 긴급사태가 전면 해제되면서 여러 지자체 내 초·중·고등학교의 등교가 시작됐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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