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정관을 바꾼 상장사 10곳 중 4곳이 사업 목적을 변경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관이 기업의 ‘헌법’처럼 여겨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에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사업 목적을 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23일 발간한 ‘2020년 주주총회 트렌드(Trend)’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안을 상정한 245개사 중 39.6%(97개사)가 사업목적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목적은 정관에 무조건 기재해야 하는 사항으로, 회사는 정관에 규정한 사업목적에 따라 경영 활동을 벌인다. 이번 조사는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연 601개사를 대상으로 시행됐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현대차와 기아차 사례를 소개했다. 두 회사 모두 스마트 모빌리티, 전동화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목적 추가 안건을 지난 정기주주총회에 상정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12월 기업설명회를 통해 “2025년까지 총 61조1,000억원을 전동화·자율주행·커넥티비티·로보틱스·UAM(도심항공모빌리티) 및 모빌리티 서비스·플랫폼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기존 분석사업의 사업과 연관성이 있고 전략적 지향점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제공자)’로 정의하고 적극적 투자를 이어감으로써 궁극적으로 해당 기업의 사업 다각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며 이 안건에 대해 찬성을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무리한 사업목적 추가 경향이 특별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측 분석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2017년 정기주주총회에서는 광림이 70여개, 쌍방울이 40여개의 신규 사업목적을 추가해 우리 연구소가 반대를 권고한 사례가 있다”며 “2020년 정기주주총회에서는 그와 같은 무리한 사업목적 추가 건은 우리 연구소의 연구 대상 기업에선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3월에 주주총회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일부 기업에서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주주총회의 소집, 기타 필요한 경우 이사회의 결의로 정한 날’로 변경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정기주주총회가 3월 말에 집중되는 이유가 ‘의결권 행사 기준일’이 ‘결산기 말일’과 ‘배당기준일’과 일치시키는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한국금융지주 예시를 들었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제14조 제1항과 제2항을 삭제해 결산기 말일 이후에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정할 수 있게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제1항에는 매 결산기 종료일의 다음 날부터 1개월 동안 주식의 명의개서 등을 정지하는 내용이, 제2항에는 매 결산기 마지막 날 주주명부를 기준으로 주주총회 권리를 행사하게끔 한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다만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자칫하면 주주총회 분산 노력이 주주들의 배당 결정권을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설령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결산기 말일’로부터 분리해도 여전히 ‘배당 기준일’은 ‘결산기간이 끝난 때’와 똑같기 때문이다. 비록 법령에서 이익배당을 포함한 재무제표 승인 주체를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바꿀 수 있게끔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정관 변경 후에는 주주들이 배당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고 연구소는 내다봤다.
김남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주주총회 분산보다 배당 결정 참여가 더 중요하다”며 “결산기 말일을 배당기준일로 정하는 실무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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