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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신과 로봇]탈로스는 '영토 방어' 입력된 AI 로봇이었다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고대신화 속 인공생명체 소재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 던지고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사회 성찰

AI 등장시킨 영화 작품들 통해

불멸·기술윤리 문제 등도 되짚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 판도라는 ‘인류를 괴롭힐 항아리를 열라’는 명령이 입력된 안드로이드 로봇과도 같다.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명을 받아 판도라를 만드는 모습. 판도라 신화를 해설하기 위해 제작된 현대의 신고전주의 양식 보석 인각./사진=을유문화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류의 열망은 ‘인간이 조작하되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만들어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둑 천재 알파고의 등장도 더는 놀라운 사건이 아닌 시대다. 과학기술과 윤리, 새로운 시스템 등 AI가 바꿔놓을 ‘미래’를 예측하는 수많은 서적이 쏟아지는 이때, 신간 ‘신과 로봇’은 오히려 시간을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돌린다. 익숙한 그리스 신화 속에 자리 잡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에 대한 고민과 딜레마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금속 로봇 탈로스. 현대의 과학용어로 설명한다면 탈로스는 ‘영토 방어’가 프로그래밍된 AI 로봇이다./사진=을유문화사


고대 신화는 거대 로봇이나 인간을 흉내 낸 안드로이드와 같은 수많은 기계에 대한 상상의 집결체다. 대표적인 것이 탈로스다. 탈로스는 영토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는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피조물로 거대한 크레타섬의 둘레를 하루 세 바퀴씩 돌면서 미노스의 왕국을 지켰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움직이는 금속 기계 탈로스는 인류가 최초로 기록한 로봇인 셈이다. 신화 속 탈로스에 대한 묘사를 오늘날의 과학 용어로 바꾸면 ‘영토 방어가 프로그래밍된 AI’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탈로스가 근대 이전 시기에 세상에 알려진 오토마타(automata), 즉 자동기계라고 주장한다. ‘탈로스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동력원을 가졌고, 주변을 지각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으며 자신의 행동 또는 과제 수행을 위해 주변과의 상호 작용을 결정할 일종의 지성 또는 데이터 처리 과정을 갖춘, 스스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다.’

중요한 건 탈로스가 로봇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 거대한 청동 로봇은 ‘영토를 더 완벽하게 방어하려면 불멸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내가 너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마녀 메데이아의 꼬임에 넘어가 쓰러지고 만다. 탈로스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의 맹점을 파고든, 메데이아라는 해킹이 성공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그리스 신화에 드러난 ‘인공지능에 관한 딜레마’에 주목한다. 탈로스는 왜 영생하고자 했는가, 이 로봇이 죽음 혹은 소멸을 두려워했다면, 그를 인간적 존재로 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적인 존재’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오늘날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고민이 수천 년 전 신화 속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제작된 꽃병에는지상에서 임무를 다하도록 신들이 능력을 채워 넣으며 만들고 있는 판도라의 모습(왼쪽 위)이 그려져 있다. 이런 여성 안드로이드는 1927년 제작된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 속 사악한 기계인간 ‘마리아’로도 표현된 바 있다. /사진=을유문화사


신화 속 여성 안드로이드 ‘판도라’의 존재에는 AI와 윤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의 기술을 받아들인 인류를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를 만들라고 명령한다. 아름다움, 예술에 관한 지식, 기만적인 천성 등 인간의 특성을 부여받은 이 인공 소녀에는 ‘인류를 영원히 괴롭힐 재앙이 든 항아리를 열라’는 명령이 입력된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광범위한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AI가 스스로 속임수를 쓸 수 있게 된 시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시작된 혼란 위로 테크노 악몽과 미래지향적인 꿈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대의 모습이 겹쳐진다.



책은 AI와 함께할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내재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흉내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고민을 자연스레 AI를 둘러싼 오늘날의 논의로 옮겨온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과학적 주제 의식이 담긴 다양한 영화도 예시로 언급했다. 최초로 AI를 등장시킨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를 비롯해 ‘블레이드 러너(1982)’,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천공의 성 라퓨타(2004)’ 등 신화 속 발상에 기초해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불멸, 자유 의지, 노예제, 악의 기원 같은 깊이 있는 영역에 다가선다. 기계처럼 변하는 인간과 인간 같은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 옛날이야기를 통한 미래 성찰이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2만 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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