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7일 선보인 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뒤흔들었던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 울린 승전보다. 기대했던 ‘효자’ 반도체는 물론 소비위축에 직격탄을 맞았던 스마트폰과 가전도 예상보다 선방하며 8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에도 웃을 수 있으려면 소비심리가 정상 궤도로 돌아와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만 해도 주인공인 삼성전자도, 관찰자인 증권가도 이 같은 성적표를 기대하지 않았다. 비대면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반도체사업부문(DS)에 ‘코로나19 특수’가 시작됐다는 분석은 있었지만 여러 사업 부문 가운데 한 곳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전사 영업이익의 40%를 담당하는 DS라 해도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뛰어난 실적을 장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반전의 흐름은 무선사업부문(IM)에서 물꼬를 텄다. 증권가에 따르면 IM은 2·4분기에 1조8,000억~1조9,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조원 초반대의 영업이익을 점쳤던 전망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올린 영업이익 1조5,600억원보다 높다. 코로나19 탓에 국내외 생산기지가 일시적으로 폐쇄되고, 각국의 이동제한 정책으로 주요 도시의 유통채널이 모두 문을 닫은 상황 속에서 올린 성과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마케팅 비용을 효율적으로 집행했고 세계적으로 분기 말부터 반등한 소비심리를 영리하게 따라잡았다. 판매가격을 합리화해 실속을 챙기는 마케팅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리츠증권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량이 6월 급등하며 2·4분기 전체 5,400만대를 내보내며 직전 분기에 비해 7% 감소하는 데 그친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결국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과 8월 중순부터 나오는 신제품의 성공 여부가 하반기에 IM이 정상궤도로 돌아올지를 가늠할 요인으로 꼽힌다. 하반기에는 갤럭시노트20·갤럭시 폴드2·갤럭시 Z플립 5G 등이 대거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회성 수익을 고려한다면 이번 어닝 서프라이즈는 IM의 실적 덕분”이라며 “예상보다 스마트폰이 잘 팔렸지만 결국 실적은 삼성전자가 3·4분기부터 펼쳐질 애플과의 대결에서 어떤 성과를 보여줄 것이냐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영업이익 효자인 DS는 전망대로 세계 1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5조4,000억원가량으로 추정되는 DS 영업이익은 메모리반도체, 그중에서도 비대면 경제활동이 크게 늘며 탄력을 받은 서버용 D램이 가져왔을 것으로 분석된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쇼핑 등이 증가하면서 클라우드 업체들의 부품 가수요가 D램 시황에 활력을 불어넣은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DDR4 8Gb 기준 PC용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6개월간 상승했다. 지난달에는 5월과 같은 수준인 3.31달러를 기록해 잠시 주춤했지만 2달러대에 머물렀던 가격이 2·4분기에 돌입한 4월부터 3달러대로 올라섰기에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분석이다. 서버용 D램(DDR4 32GB 기준)도 연초 109.0달러였지만 2·3월 상승을 거듭하며 4월에는 143.1달러까지 오른 뒤 5월에도 동일한 가격이 유지됐다. 덕분에 이 시장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떨치는 삼성전자는 애플 등 주요 고객사의 신규 스마트폰 출시가 하반기로 밀리는 악재에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전사업부문(CE)은 극심한 소비위축에 크게 흔들렸지만 각국이 경기 불황을 막기 위해 뿌린 정책자금의 수혜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는 CE 영업이익을 7,000억~9,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부문은 일회성 수익 덕에 흑자 전환했다. 애플이 아이폰 매출 부진으로 디스플레이 부문에 약속했던 물량을 구입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한 결과다. 보상금 규모는 8,000억~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3·4분기에는 스마트폰과 TV, 가전 판매가 정상화되며 삼성전자가 실적 개선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반도체 고객사의 재고 축적으로 하반기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디스플레이 부문 일회성 이익이 2·4분기에 미리 반영돼 3·4분기 실적이 2·4분기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에 인터넷 데이터센터(IDC) 업체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D램을 많이 구매했지만 하반기에도 동일한 수요가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며 “다만 3·4분기에는 TV나 스마트폰 출하 상황이 더욱 좋아지고 디스플레이도 애플 등 고객사에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공급을 시작하기 때문에 전사 영업이익은 9조3,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현장경영도 삼성전자를 ‘역대급 실적’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염 예방을 이유로 일부 생산기지가 가동을 멈춰야 했던 극한상황에서도 이 부회장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임직원과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독려한 결과가 실적으로 나타났다고 재계에서는 평가한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지난 2·4분기 전문경영인의 현장 판단을 귀담아듣고 방향을 제시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임직원 안전을 위한 시스템 마련부터 셧다운 이후 현업에 복귀한 임직원과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영향을 미쳤다. 재계에서는 지시만 하는 총수가 아니라 현장으로 달려가 임직원과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이 사내 위기극복 의지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현장경영을 고집했다. 확진자가 발생해 잠시 멈췄던 경북 구미 스마트폰 공장을 비롯해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5월17일), 경기도 화성 반도체 연구소(6월19일), 경기도 수원 생활가전 사업부(6월23일), 세메스 천안사업장(6월30일) 등을 찾았다. /이수민·변수연·김성태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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