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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은 존재하는가...빠져드는 '무대위 썰전'

■한국 초연 연극 ‘라스트 세션’

무신론자·기독교 변증가 2인극

종교 놓고 펜싱하듯 현란한 논쟁

배우들 밀도 높은 표현력 돋보여

능청스러운 유머로 완급 조절도

신구 “인물에 다가가지 못할까 두려웠다”

‘펜싱 경기를 보는 듯한 멋진 작품이다.’

연극 ‘라스트 세션’이 2009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무대가 발산하는 팽팽한 에너지에 평단의 찬사가 쏟아졌다. 라스트 세션은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신과 종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2인극이다. 도발적인 주제만큼이나 밀도 높은 대본과 예리한 논박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각각 프로이트, 루이스 역을 맡은 신구(왼쪽)와 이상윤/사진=파크컴퍼니




그 명성이 아깝지 않은 무대였다. 지난 10일 국내 무대에 오른 라스트 세션은 칼 아닌 말로 현란한 공수(攻守)를 주고받으며 관객의 긴장감을 요리했다. 이번 초연에서 프로이트 역은 신구·남명렬이, 루이스는 이석준·이상윤이 연기한다. 무신론, 변증법 등 듣기만 해도 어렵고 딱딱한 주제는 사실 관람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극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 중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금방이라도 충돌할 듯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진정한 행복은 순간의 쾌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하고 싶으신 거죠.”(루이스) “그 오만함이란. 인간이 고작 사과 한 알 먹었다고 신이 격분해? 그래 놓고 또 자기 아들을 보내 잔혹하게 죽여서 인간을 구원한다고?”(프로이트) 그러다가 또 각자의 엉뚱한 매력을 표출하며 관객의 폭소를 유발한다. “선생님, 그러니까 말 좀 줄이세요.”(루이스) “누구 좋으라고!”(프로이트) 적절하게 조절되는 완급의 리듬을 타고 종교에서 출발한 대화는 사랑, 성(性), 삶 등 인간을 둘러싼 주제로 확장된다.

연극 ‘라스트 세션’의 연습 현장/사진=파크컴퍼니


방대한 대사와 그 내용을 훌륭하게 표현한 배우들은 단연 돋보인다. 라스트 세션이 보여준 무대는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된 결과물’이라는 만족감을 안겨줬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능청스럽게 상대를 파고드는 자연스러움은 대본에 대한 치열한 연구를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4인의 주역은 개막 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작품의 고됨과 그 심적 부담감을 토로한 바 있다. 무대에서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었을 법한 신구조차 “인물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라는 걱정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그래서 네 배우는 자료를 뒤지며 공부했고, 틈만 나면 장외 토론을 벌였다. 간담회 역시 토론의 장으로 바뀌곤 했다. “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돼요. 루이스는 자기 논리가 맞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허약해요.”(남명렬)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다 과학으로 증명합니까. 과학만이 절대 진리는 아니죠.”(이석준) “신을 증명을 해야 한다는 출발부터 잘못된 거 아닌가요.”(이상윤) 불꽃 튀는 설전을 한 마디의 유머로 끝내는 것은 역시 최고참 신구다. “나는 프로이트 이 양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던데, 허허.”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각각 프로이트, 루이스 역을 맡은 남명렬(오른쪽)과 이석준/사진=파크컴퍼니


작품 속 시대 배경에도 눈길이 간다.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은 1939년 9월 3일,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발표한 날이다. 죽고 죽이는 비극의 현장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남명렬은 말한다. “이 논쟁들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가져가기 위한 견해일 뿐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에 대한, 앞으로 영원히 벌어질 논쟁인 것이죠.”

극 말미에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집을 떠나며 “시대를 초월한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한 게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 말을 되받으며 작별 인사를 고한다. “더 미친 짓은 그렇다고 생각을 멈춰버리는 거지.” 종교를 떠나 극장을 나선 뒤에도 한참 동안 생각이 멈추지 않는 작품이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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