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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경제 반등' 자신했지만…잠자는 뭉칫돈에 발목잡히나

통화량 석달새 100조 늘었지만 투자·소비로 안이어져

'유동성 함정' 더 깊어질 우려…금융당국 곤혹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 통화량이 3개월 만에 100조원 가량 팽창했지만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 ‘돈맥 경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시중자금이 은행에 대거 예치되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쏠리는 반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풀어도 풀어도 돈이 안 돈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통화량(M2)을 집계한 지난 5월 시중에 3,053조9,000억원의 자금이 풀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창궐한 2월 M2(2,956조7,000억원)에 비하면 97조 2,000억원 급증한 수치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등 일반적인 통화량 지표다.

한은이 지난 3월 0.50%포인트(P), 5월 0.25%P 등 두 차례 기준금리를 0.75%P 내린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에 더해 정부가 3차례에 걸쳐 59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유동성은 풍선처럼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 은행의 기업·자영업자 대출은 77조7,000억원 늘었고 가계 대출은 40조6,000억원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가계·기업 대출이 118조3,000억원 늘어났지만 이에 비례해 은행 수신도 108조7,000억원 급증했다. 경제주체들이 위기상황에서 대출을 급속히 늘렸지만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고 은행에 쟁여놓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신용창출을 통해 증가하는 M2를 의미하는 통화승수는 지난 5월 15.06배로 3월(15.26배)에 이어 최저로 떨어졌다. 통화승수가 낮다는 것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풀린 돈이 실물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저 수준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광의 통화(M2)로 나눠 계산하는 통화유통속도는 지난 1·4분기에 0.64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한은이 통화량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다. ‘유동성 함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인 서강대 교수는 “한은은 기준금리를 낮추고 정부는 공격적으로 재정확대 정책을 구사했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2·4분기에도 통화유통속도는 개선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패닉바잉·공모주 열풍에 투자는 '냉골'

시중 통화량이 급증해도 돈이 돌지 않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은데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돈이 쏠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산거품(asset bubble)이 더욱 커지면서 투자와 성장률이 회복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골이 더욱 깊이 패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자 돈이 부동산 주변을 맴도는 현상이 심화하고 소비 성향이 높은 2030세대마저 자금을 모아 집을 사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주식시장에서 단기·고수익을 노리며 경제주체들이 대기 상태로 자금을 보유하고 있어 갈 곳 없는 부동자금이 증가하고 있다.





"자산가치 증가가 소비 못늘려"

27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통화량(M2)은 3,053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35조4,000억원 늘어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한은과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무제한 유동성 공급에 나선 탓이다. 하지만 경제주체들 간에 돈이 돌지 않으면서 ‘유동성 함정’을 시사하는 통화승수는 5월에 전달(15.30배)보다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최저였던 3월(15.26)보다 더 떨어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돈이 소비·투자를 통한 거래 대신 축적 효과가 큰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에 잠기면서 실물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올 상반기 주택 매매 거래량은 62만878건으로 지난해 동기(31만4,108건)에 비해 두 배 수준으로 늘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가 집값 상승에 지난해 말 12·16대책에 이어 6·17대책까지 발표했지만 무용지물로 오히려 집값이 오르자 시장에서는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의한 사재기)’마저 발생했다. 집값 상승이 촉발한 주택 거래 확대는 주택담보대출 등을 늘렸지만 소비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자산가치 증가가 소비를 늘리는 ‘부의 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부동산 열풍에 기업 대출마저 생산유발 효과가 낮은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확대됐다”고 답답해했다.



주식 신용잔고 13.5조 사상 최대

집값이 고공행진을 지속하자 불안해진 2030세대도 ‘집 장만’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에서 올 5월까지 30대의 주택담보대출은 58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조9,000억원 늘었다. 20대도 같은 기간 4조5,000억원 증가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20대와 30대는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큰 집단인데 집을 사는 데 여유자금을 총동원하고 빚까지 내 경제 전반에서 소비 감소를 부채질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에서 소외됐거나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증시로 몰리고 있다. 16일 기준 증시의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13조5,17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경신, 3월 하순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4월 15조원가량이던 주식담보대출 잔액도 이달 들어 17조5,192억원까지 급증했다. 31조원의 자금이 몰렸던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 같은 이벤트를 기대하고 시중 자금이 단기 부동화하는 현상은 금융상품별 통화량 증감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은행 정기예금은 9조8,000억원 급감한 반면 수시입출식 예금은 32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3월 말 1,106조원으로 네 달 만에 100조원가량 늘어난 부동자금은 이달까지 1,200조원 안팎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과 정부가 공급한 자금이 소비·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대기성 자금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은행의 예금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한은은 상반기 은행의 기업·자영업자 대출이 77조7,000억원 증가하고 가계대출도 40조6,000억원 늘었지만 총수신 규모도 1,858조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08조7,000억원 급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위기로 가계와 기업에 대출을 늘렸지만 상당 부분은 쓰이지 않고 은행 창구로 돌아간 셈이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중에 돈은 많아졌지만 수요가 없어 기대 인플레이션도 낮다”면서 “과거 일본처럼 통화량을 늘려도 경기는 좋아지지 않아 통화정책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재정상황도 악화해 갈수록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줄고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손철·조지원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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