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과 기술개발에 평생을 바친 국내 제약업계의 거인 임성기(사진)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0세.
임 회장은 서울 종로 귀퉁이의 작은 약국에서 출발해 48년간 이끈 한미약품을 굴지의 제약회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지난 1940년 3월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한 고인은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뒤 1967년 종로에 ‘임성기약국’을 열었다. 약국은 곧 ‘서울 3대 약국’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당시 유행하던 성병을 치료하고자 적극적으로 항생제를 보급한 덕분이었다. 6년 뒤에는 임원진을 구성해 ‘임성기제약’을 설립했고 이는 한미약품의 모태가 됐다.
오늘날 한미약품은 30여건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매출 1조원이 넘는 명실상부 국내 제약업계 최고 기업으로 거듭났다. 특히 고인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의약품 복제약을 판매하던 시절 창업해 국산 신약개발의 필요성을 주창하며 국내 제약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한국형 의약품 연구개발(R&D) 전략’을 세우고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임직원들에게 “신약개발은 내 목숨과도 같다”고 말한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임 회장의 일념으로 혁신 신약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한미약품은 대다수 제약회사가 매출의 5~7% 정도를 R&D 비용으로 지출하던 2000년대 초반 이미 매출의 10% 이상을 신약개발에 쏟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동안은 20% 가까이 꾸준하게 투자하며 제약회사 중 가장 많은 R&D 비용을 투자했다. 2019년 사업보고서 기준 한미약품의 R&D 투자는 2,098억원으로 연매출 1조1,137억원의 18.8%에 달했다.
그 결과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개량신약 ‘아모잘탄’ ‘아모디핀’ 등을 선보였다. 2013년에는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에소메졸’로 국내 개량신약 최초로 미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았다. 또 1989년에는 국내 제약사 최초로 기술수출에도 성공한다. 다국적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 제법에 관한 기술을 수출한 것이다.
최근 기술수출이 국내 제약업계에서 수익모델로 자리 잡은 것 역시 임 회장이 길을 열어놓은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미약품이 현재까지 성공한 기술수출 계약 건수는 9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신약개발을 하려면 임상부터 상용화까지 한 제약사가 책임지는 것을 관행처럼 여겼다. 그런데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수조원대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개발 단계마다 기술료를 받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바이오벤처 업계에는 수천억원이 드는 임상 3상까지 가지 않고 기술수출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 기술수출 계약 5건이 해지되는 쓰라린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임 회장은 “신약개발에는 어려움이 있고 위험성도 있지만 나를 믿고 R&D에 더 매진해달라”며 마지막까지 임직원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임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씨와 아들 종윤·종훈씨, 딸 주현씨가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추후 정해질 예정이며 발인은 오는 6일 오전이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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