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난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이면서 뉴욕타임스(NYT)에 활발하게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내린 고금리, 긴축처방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우리나라 매체들 사이에서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인물로 꼽힙니다. 지면을 통해 대부분의 내용을 전달했지만 지면 제약상 다 담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인터뷰 중에 한국 정부 부채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일반적인 부유세와 양극화 대한 해법도 물었습니다. 찬반이 있을 수 있고 국내에서도 논란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변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케인지언이며 진보 성향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통화약세에 인플레 오겠지만 높은 수준 아냐...미국처럼 부채위기 가능성 적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개도국이 아니다. 한국은 호주나 미국처럼 성공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부채의 경우 어떤 이유로든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통화가치가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것은 끔찍한 일은 아니다. 통화가치 하락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닐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가 부채 위기를 겪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이 한국에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기자가 이 같은 질문을 한 배경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20여년 전에 분명히 위기를 겪었다”며 “하지만 그건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외화부채에 의존하는 다른 나라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로새겨진 IMF 트라우마를 언급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미국에 관한 것인데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적정 부채비율이 얼마라고 딱 짚어서 말하긴 힘들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면 더 높아도 된다”고 합니다. 일본은 정부 부채가 238%로 200%가 넘습니다. 이 와중에 대규모로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고 있죠. 미국은 이대로라면 내년에 부채비율이 130%가 넘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들의 적정 부채비율을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근 보수성향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5.4%로 적정 수준인 40%를 넘어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부자증세는 좋은 생각...문제는 '정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AOC 같은 진보 정치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세제인데 쉽게 말해 집값이나 주가가 오르기만 해도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동산이나 주식을 팔 때 차익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만 예를 들어 애플의 주가 상승으로 주식가치가 100억원에서 200억원이 되면 이를 팔지 않고 갖고만 있어도 세금을 물리자는 겁니다. 앞서 미 경제방송 CNBC는 이 법안에 따르면 뉴욕의 억만장자들이 매년 55억달러를 추가로 내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것이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럼에도 이것은 확실히 좋은 생각(certainly a good idea)”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 해법으로는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꼽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국민들이 위기로 더 큰 고통을 겪습니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으로 더 악화됐습니다. 위기 때문에 실직한 대표적인 사람들이 식당 종업원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불러온 양극화에 대한 해법은 사실 꽤 간단합니다. 사회안전망을 통해 실업자 모두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이지만 특히 가장 어려운 계층인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해결책에 가장 큰 걸림돌로 정치권을 꼽았습니다.
“양극화 해소는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사실 정책적 해결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일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문제는 정치라는 얘기, 미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