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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어정쩡한 논문연구 그만…AI로 의료·제조·문화 '삼각 혁명' 일궈야"[청론직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대학 10년 뒤 절반 사라지는데…코로나 기회로 혁신 절실

원격의료·제조혁신 등 SW파워 키우는 ‘AI-X’ 전략 펴야

기업 AI 인재·기술 부족…정부 R&D과제 뒤처진 연구 많아

교수·연구원 기업 파견 허용하고 장기·원천연구 확대를

김정호 KAIST 교수가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대학의 기초연구와 산업화 연구가 어정쩡하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료·제조업·문화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디지털 삼각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이호재기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 활용으로 의료·제조업·문화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디지털 삼각 혁명’을 꾀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AI·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김정호(59·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10일 서울 율곡로 서울경제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디지털 삼각 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KAIST 등 대학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날 대학이 어정쩡한 논문연구에서 벗어나 창의력에 기반을 둔 원천연구와 시장 창출형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노벨상 수상이나 기술이전·창업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R&D 과제도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바람에 현실에 뒤처진 사례가 많다면서 장기적 혁신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대학의 미래에 관해 국제포럼을 잇달아 주최한 것으로 안다.

△언젠가는 AI가 교수 강의와 업적을 평가하고 온라인 교육도 학생 진척도나 반응에 특화된 맞춤형 교육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온라인·가상 캠퍼스도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대학 스스로 평가기관의 순위에 연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빨리 디지털혁명을 꾀해 혁신 교육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으로 10년 뒤 대학의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인데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삼아 디지털 기반으로 빨리 혁신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대학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기초 분야와 산업화 연구를 더 힘차게 진행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어정쩡한 논문연구에 그친다. 해외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뒤좇아가는 수준의 단기연구에 매달리는 셈이다. 기초연구의 경우 한 분야에서 독창적 연구를 30년 이상 해야 성과가 나오고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 산업화 연구도 원천연구가 뒷받침돼야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 분야에서 장기연구나 기초실력이 부족하다. 산업화 연구도 너무 약한데 시장이 요구하거나 시장을 창출하는 연구가 시급하다.

-KAIST 기술이전 수입이 지난해 처음으로 연 100억원을 넘었지만 기술 사업화는 여전히 부족한데.

△대학이 시장과 자본에서 떨어져 울타리를 치고 갇혀 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이 별로 없는데 기업과 가까워져야 하고 실리콘밸리를 제집 드나들듯 해야 한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많은 연구소와 교수가 있지만 거기에만 머무른다. 교수를 평가할 때 기업과 얼마나 활발히 협력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공대 교수평가마저 논문 위주로 이뤄져 있다. 그보다는 국제화나 산학협력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논문은 부산물 정도로 봐야 한다. 교수와 연구자의 자세와 문화도 변해야 한다. 교수와 연구원이 파격적으로 기업 연구원을 겸직하거나 기업에 파견 나가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교수가 (6년마다) 안식년을 갖게 되면 해외에서 재충전하는 개념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기업에서 기술개발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연구팀이 산학협력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 연구팀은 기술력을 갖춘 모 중견기업과 10년 이상 협력하고 있는데, 매년 제품개발 로드맵을 공유하고 기술 테스트도 실시한다. 여러 기업 R&D팀과 한 몸처럼 움직여 성과가 좋다. SK하이닉스에 연구원을 파견해 첨단 반도체 설계를 같이 하며 미국 구글이나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성과도 냈다. 얼마 전에는 하이닉스 임원 20명과 KAIST 교수 30명이 온라인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모색하도록 했다. 삼성전자와 공동 워크숍도 갖고 온라인 기술교류도 진행하고 있다. 매년 삼성전자에서 대규모 산학연구비를 지원받아 AI 교수는 물론 이공대 교수 등 총 100여명에게 제안서를 받아 장기 기초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다. 기업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윈윈 모델이 확산됐으면 한다.

-기업과 정부의 R&D 과제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업 과제는 상당히 자유롭고 기업의 욕구가 반영돼 매우 도움이 된다. 오히려 공부가 된다. 정부 R&D 과제의 경우 일부는 너무 단기성과를 요구해 대부분 결과가 나와도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를 10년 이상 유지하면 좋겠다. 상용화된 제품의 국산화는 중국이 값싸게 만들고 있어 효과적이지 않다. 소재·부품·장비, 반도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연구비가 많이 늘어난 것은 바람직하지만 단기성과보다 6세대(6G) 통신이나 AI 반도체 등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가 중요하다. 비슷한 내용을 해외에서 연구하고 있으면 정부는 지원을 끊어야 한다. 패스트팔로어(추격자) 연구보다 퍼스트무버(선도자) 연구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AI 수준은 어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스마트팩토리 사업을 하는데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율 개선 연구 등에 대한 투자가 많은 편이다. 다만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처럼 무형에 대한 인력과 기술은 약하다. 미국의 엔비디아·구글·인텔을 넘어서려면 좀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문화가 있어야 한다. 현대차와 LG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대학과 공동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우리 실험실 출신 석박사생 80여명 중 30여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취업했는데 미국의 한 기업에 가서 전기차의 고주파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에 취직한 학생은 최고경영자(CEO)의 집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엔비디아나 구글·테슬라·램버스 등에서 성과를 내면 바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이런 개방적 문화가 필요하다.



-국내 기업과 대학의 AI 핵심 인력이 부족한데.

△반도체·바이오메디컬·교육 등 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AI 핵심 인력인데 규모가 미국의 100분의1에 머물러 있다. 학술 경쟁력이나 원천기술이 없어 맨날 남의 것을 따라다니다 그렇게 됐다. 자동차·반도체·스마트폰·부품·가전 등에 AI를 활용해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AI 핵심 인력을 연간 1,000명씩 길러내야 한다. 전국 대학에 AI 학과를 만들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에서 낙후된다. 인문학이든 법학이든 AI는 필수다.

-KAIST AI대학원이 1년반 정도 됐는데 어떤가.

△AI 핵심 인력이 워낙 귀해 삼성 등에 가면 3억~10억원의 연봉도 받을 수 있으나 대학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차이를 메워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대학에서 좋은 인력과 환경을 만들어 마음껏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엔비디아나 애플 등은 좋은 공간에서 칸막이 없이 소통하도록 한다. 여건만 잘 뒷받침되면 우수 인재들이 몰려온다. KAIST는 순수하고 열정도 있는데다 콘텐츠가 강해 요즘 국내외의 우수한 젊은 교수들이 많이 오려고 한다.



-AI를 키워 국가경쟁력을 키우자는 게 평소 소신인데.

△AI를 기초로 독창적인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제약 분야의 경우 글로벌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AI를 무기로 앞세워야 한다. AI로 원격의료 등 의료혁명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TV·자동차 등 기존 산업도 AI·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네이버·카카오, 게임사처럼 많은 기술기반 벤처 창업도 나와야 한다. AI 서비스 분야도 활성화해 교육을 혁신하고 문화를 업그레이드해 K컬처를 더욱 확산해야 한다. 이런 것이 AI 응용기술, 즉 AI-X전략인데 KAIST가 추구할 방향이라고 본다.

-AI-X전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반도체·인터넷·제조업·의료·문화 등이 강하나 AI·소프트웨어는 약하다. AI·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의료·제조·문화 분야의 세 꼭짓점이 모두 강한 ‘삼각형 전략’을 펴야 한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 활성화도 중요하다. 미국·중국 등 해외에서는 AI·빅데이터·클라우드 투자를 많이 하는데 자칫 우리가 뒤처질 수 있다. 교육도 주입식으로 정답을 찾는 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석박사 과정도 이미 창의력이 떨어진 경우가 있고, 박사를 마친 뒤 자기 연구를 새로 할 때 애로가 많은 게 문제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정부·국회·법원·검찰 등도 AI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5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인가.

△AI와 의료·바이오 기술을 결합하면 의료혁명, 즉 일은 로봇에게 시키고 죽지 않거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시대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IT가 강하니 그중 AI·빅데이터를 활용해 의료·제약산업과 융합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도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의과학자를 많이 양성해 AI·빅데이터 인력과 같이 연구하고 벤처를 창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의 경우 백신이 나오더라도 5~6년간 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KT·BC카드와 함께 AI·빅데이터 기반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효과적인 방역대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학자로서의 목표는.

△저는 연구하고 교육하는 게 참 행복한데 제가 생각하고 연구한 기술이 인류와 사회·산업에 이롭게 사용되도록 하는 게 꿈이다. AI 컴퓨터에 우리 연구실이 연구한 컴퓨터 모듈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 부품도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컴퓨터·AI를 전공한 세계적으로 우수한 공학자 100명을 제자로 배출하고 싶다. 이들이 세계로 뻗어 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러한 핵심 인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산업 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he is…

1961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1G디램설계팀을 거쳐 1996년 KAIST로 옮겨 고성능 AI 컴퓨터에 필요한 고대역메모리모듈(HBM)을 처음으로 연구했다. 평소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이다. KAIST에서 연구처장을 지낸 뒤 현재 글로벌전략연구소(GSI) 소장, 삼성전자 산학협력센터장, 한화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싱크탱크인 ‘국민성장’의 과학기술분과 부위원장 겸 4차산업혁명팀장을 맡았고 이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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