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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사회
하늘과 이어준 황제의 제단...지금은 라오바이싱에 내어주다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7> ‘황천상제’ 모신 천단

'하늘의 아들' 권능 부여한 불멸의 공간

기곡단 위에 세운 기년전선 풍작 기원

원구단 천심석에 올라선 하늘과 대화

1420년 明때 지어 淸왕조까지 유지

공화국 성립 후 공원화, 일반에 공개

휴일 즐기고 소원비는 사람들로 붐벼

전통시대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이 지금은 라오바이싱들로 붐비고 있다. 휴일을 즐기고 또 소원도 비는 사람들로 늘상 가득찬다. 정면에 있는 것이 천단의 대표 건축물인 기년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민족 모두 자신들의 기원을 하늘에서 찾고자 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황제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자신의 권능이 하늘에서 부여받았다는 관념이 현실에 투영되면서 제단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전통시대 역대 왕조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천단(天壇·톈탄)’을 갖고 있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천단이 불멸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제의 독재와 독점이 사라지고 공화국이 된 현재는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서민) 누구나 천단에 와서 각자의 목소리를 하늘에 새길 수 있게 됐다.

아쉽게도 중국에서 베이징 이외의 다른 장소에 남은 천단은 사실상 없다. 과거 새로운 왕조는 유일한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앞선 왕조의 천단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천단은 지난 1420년 명 왕조가 세웠다. 다행히 한족의 명나라를 이은 만주족의 청 왕조가 천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제국시대의 몰락 이후 뒤를 이은 중화민국도 천단을 파괴하지 않았다. 대신 황제의 제단이었던 ‘천단’이 이제는 ‘천단공원’으로 바뀌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현재의 천단공원은 2.73㎢ 규모의 면적을 자랑한다.

베이징 천단은 구조적으로 특이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방식, 즉 제천(祭天) 방식이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천단은 크게 기년전(기곡단)과 황궁우·원구단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위치는 기년전이 가장 북쪽에 있고 ‘단폐교’라고 부르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황궁우·원구단이 있다. 세 시설은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있는 셈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은 기년전과 원구단이다. 기년전은 건물의 이름인데 이 건물은 기곡단이라는 제단 위에 세워져 있다. 바꿔말하면 천단의 두 개 제단은 기곡단과 원구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원구단에서는 동지 때 ‘제천대전(祭天大典)’이 열렸고 기곡단에서는 음력정월에 ‘맹춘기곡대전(孟春祈谷大典·풍작을 기원하는 제사)’이 진행됐다.

두 제사 대상이 어떻게 다른지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다만 형식만으로 보면 기년전의 제천행사 중심에 ‘신’이 있다면 원구단은 중심에 ‘인간’이 있다. 기년전은 위패를 가운데 두고 인간은 주위에서 제사를 모시는 형태다. 이 때문에 단 위에 기년전이라는 건물을 만들었다. 기년전과 기곡단이라는 제단·전당이 일체화됐는데 ‘신’도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가족과 천단을 찾은 한 아이가 원구단 ‘천심석’ 위에 서 있다. “아이의 마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사진 위쪽에 보이는 것이 황궁우의 지붕이다.


반면에 원구단은 어떤 건물도 없이 하늘에 노출돼 있다. 명목상으로는 천자지만 인간인 황제는 가운데 있는 천심석(天心石)에 올라 하늘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원구단이 더 인간적이다. 지금도 기년전을 방문한 사람들은 단순히 건물 밖에서 안쪽의 위패를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원구단에서는 직접 천심석에 올라설 수 있다.

세번째 장소인 황궁우는 평소에 위패를 모신 곳이다. 천단의 위패를 보면 ‘황천상제(皇天上帝)’라고 적혀있다. 한국에서 부르는 옥황상제와는 다소 다른 이름이다.



천단을 방문할 때는 서문으로 입장할 것을 추천한다. 현재 천단공원에는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기년전과 가까운 동문으로 들어간다. 다만 그럴 경우 원래 천단이라는 상징성을 느끼기 쉽지 않다. 전통시대 중국 황제들은 자금성을 나와 천안문·정양문을 거쳐 남쪽으로 쭉 내려온 후 천단 서문을 통해 들어왔다. 서문을 들어오면 기년전이나 원구단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천단의 웅장함을 추체험할 수 있는 통로다.

기년전과 황궁우 사이에는 남북으로 길이 360m의 단폐교라는 큰 길이 있다. 단폐교의 도로면은 수평이 아니고 북쪽이 더 높다. 기년전이 있는 북쪽 높이가 3m인 반면 남쪽은 1m 정도다. 단폐교를 걷는 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고도차이를 뒀다고 한다. 도로에는 3개의 통행길이 있는데 가운데는 신도, 오른쪽은 어도, 왼쪽은 왕도라고 부른다. 황제는 어도를, 왕공대신들은 왕도를 각각 사용했다. 가운데 신도는 ‘황천상제’ 위패를 옮기는 환관들이 걸었다고 한다.

황궁우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 담장을 특별히 회음벽이라고 부른다. 벽을 대고 소리를 내면 멀리서도 들을 수 있다. 이른 시각에 사람들이 없을 때 시험해보면 좋다.

중국 황제이자 천자들은 다른 황제나 천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지상을 통치하는 사람은 하나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나 지역의 천단 건설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었다. 우리나라에 전통시대 천단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이유다. 그러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우리 독자의 천단이 세워졌다. 현재 서울 소공동에 있는 ‘환구단’이 그것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환구단 일부에 호텔 등이 건설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황제제도가 사라지고 공화국이 성립한 후 1918년 천단도 공원화돼 일반인을 맞았다. 여전히 중국인들은 천단에서 각자 소원의 해답을 구하고 있다. 천단은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남아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글·사진(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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