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디지털 전환시대에 대비한 혁신조달 발전방향’ 간담회에서 어느 중소기업인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중소기업은 입찰서류를 들고 정부기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일이 많은데 나라장터가 개통돼 한순간에 큰 보따리 대신에 온라인으로 서류를 제출하게 됐다. 나에게는 나라장터가 ‘작지만 큰 변화와 혁신’이었다”고 말했다.
역대급 인기를 누렸던 영화 ‘친구’나 TV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입찰이나 계약과정 등이 소재가 될 정도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조달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2년 나라장터 개통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크게 높이며 70년 조달행정의 역사에서 혁신의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나라장터를 통해 공공조달 입찰-계약-대금지급 등 대부분의 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되게 되자 간담회의 그 중소기업인이 느꼈던 것처럼 공정성과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기관방문, 입찰 서류 등 조달비용도 연간 약 8조 원 절감되는 효과를 얻게 됐다. 유엔에서 나라장터가 ‘전자조달 모범사례(Best Practice)’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전자정부 선도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들어 나라장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그 진가를 발휘했다. 2월 말 마스크 수급 대란이 발생하자 ‘마스크 공급과 유통 해결사’로 조달청이 긴급 투입됐다. 야구로 치면 9회 말 투아웃 만루 위기에 등장한 구원투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2∼3일의 짧은 시간 동안 약 130여 개 마스크 제조사와 가격과 생산량을 협상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일괄계약을 체결했다. 나라장터 시스템으로 마스크 생산과 유통 데이터를 분석하고 생산-유통-판매를 연결하는 체계적인 전달시스템을 활용해 빠른 시간 안에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었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나라장터’를 통한 중앙조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라장터는 개통 후 현재까지 약 5만 7,000 수요기관과 약 43만 조달기업이 사용하고 있고, 연간 거래규모도 약 103조 원에 달하는 등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20년째에 접어들면서 장애증가와 속도저하 등 시스템 노후화에 따른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달청은 2023년을 목표로 노후화된 나라장터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반영한 ‘차세대 나라장터’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새로운 혁신제품이 걸림돌 없이 거래되고, 더 쉽게 사용할 수 있고, 투명성과 공정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차세대 나라장터로 ‘혁신조달 새 판짜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