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이 극화되는 와중에 미국이 한국을 콕 집어 중국을 견제할 친구로 거론한 가운데 이수혁 주미대사는 “우리는 안보의 관점에서 (한미)동맹에 기대고 있고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여전히 유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달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 방한 등 미중 양국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면서 우리 정부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장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지낸 서배스천 고카가 진행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오랫동안 미국을 ‘뜯어먹었다(rip off)’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인정한 첫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합류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며 호주와 일본, 한국을 콕 짚어서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일에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중국 견제를 거론하며 “친구와 동맹을 갖는 것이 중심이고 우리는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년간 노력했으며 진정한 진전을 이뤘다”며 “그것이 인도의 친구든, 호주의 친구든, 일본이나 한국의 친구든 나는 그들이 자신의 국민과 나라에 대한 위험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반중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동맹의 동참을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의 상호방위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모형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적용하는 아이디어까지 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체인 ‘쿼드(Quad)’를 유럽의 나토처럼 다자 안보동맹으로 공식 기구화하겠단 의지를 밝히고 차기 행정부에서라도 한국과 베트남, 뉴질랜드 등 3국까지 포함한 ‘쿼드 플러스’도 출범시켰으면 하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이수혁(사진) 주미대사는 3일(현지시간) 현지에서 미국의 입장과는 다소 다른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 대사는 이날 조지워싱턴대 화상 대담 행사에서 “(미중) 양국과 협력하면서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한국이 위치를 정해야 하는지는 한국 정부에 아주 중요한 문제”라며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역내 무역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 즉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안보의 관점에서 (한미)동맹에 기대고 있고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다”며 “한 나라가 안보만으로 존속할 수 없고 경제활동도 안보만큼 중요하니 이 두 요소는 같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미동맹의 균열과 관련된 질문에는 “아주 강력하고 건강한 동맹”이라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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