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개인채무자가 금융회사에 빚을 깎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채무자가 특정시간대·특정방법으로 빚 독촉 연락을 받지 않도록 추심업자에게 요청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금융당국은 채무자가 빚을 갚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금융사와 채무자가 상생할 수 있다는 취지라지만 정작 금융권에서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빚을 탕감해줌으로써 부담을 금융사가 온전히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 또 남발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금융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소비자신용법안을 발표했다. 소비자신용법안은 기존 대부업법을 대체하고 대출 전 과정에서 개인과 금융기관 간의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법안의 핵심은 개인채무자의 채무조정요청권 도입이다. 개인채무자가 스스로 빚을 갚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 채권금융기관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채권기관은 바로 추심을 중지하고 채무자의 소득·재산현황 등을 바탕으로 10영업일 내 채무조정안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채무자의 연체 및 추심 부담도 완화된다. 채권금융사가 개인 연체채권에 대해 기한이익상실(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할 경우 상환기일이 오지 않은 채무원금에 연체 가산이자를 부과할 수 없다.
추심업자가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위해 연락하는 것도 일주일에 7회로 제한된다. 채무자가 특정시간대, 특정방법과 수단으로 추심 연락을 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내용의 소비자신용법을 추심업자가 위반할 경우 추심업자뿐 아니라 원채권을 보유했던 금융사도 함께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당국은 채무자가 과도한 빚에 억눌려 잠적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채무조정으로 재기를 도와 금융사·채무자가 윈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사들은 이 같은 법안이 도입되면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을 것이라며 심각한 모럴해저드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도를 악용하는 채무자가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며 “정부가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금융사는 당연한 권리인 연체 채권 회수가 어려워지는 등 시장 기능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토로했다.
/김지영·김현진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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