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극장가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디즈니 영화 ‘뮬란’의 실사판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연 배우 유역비의 홍콩 경찰 지지 발언부터 디즈니사의 인권탄압 정당화 일조 의혹까지 전 세계적으로 ‘뮬란’과 관련한 논란이 거세다.
오는 17일 국내 개봉을 앞둔 ‘뮬란’은 중국 남북조시대를 배경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뮬란이 가족을 위해 여자임을 숨기고 전장에 나가 위대한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중화권 톱스타 유역비가 주인공을 맡았고, 1998년 개봉한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22년 만에 실사화해 기획단계에서부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제작비만 2억 달러에 이른다.
애초 지난 3월 개봉 예정이었던 ‘뮬란’은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면서 수차례 일정을 변경한 끝에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자사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했다. 국내에서는 9월 극장 개봉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지난 4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온라인 개봉한 ‘뮬란’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홍콩 대만 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뮬란’ 보이콧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이콧의 시작은 타이틀롤을 맡은 유역비의 발언부터였다. 지난해 홍콩에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유역비는 자신의 SNS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쳐도 된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을 올리며 중국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뜻을 밝혔다. 이에 트위터 등 온라인상에서는 ‘뮬란’을 보이콧하자는 ‘#BoycottMulan’ 운동이 확산됐고, ‘뮬란’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뮬란’이 인권 유린으로 비난 받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일부 지역에서 촬영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이콧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AP통신은 9일(현지시간) 디즈니가 위구르족 인권 탄압이 자행된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뮬란 촬영을 진행해 비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당국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뮬란의 “노골적인 엔딩 크레딧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문제의 엔딩 크레딧에는 촬영에 협조해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정부가 ‘재교육 수용소’를 운영하며 위구르족을 강제로 구금하고 인권을 탄압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다. 세계위구르의회(WUC)가 이와 관련해 “디즈니가 ‘뮬란’으로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이곳은 동투르키스탄 수용소에 관여해온 곳”이라는 글을 SNS에 게재하는 등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이는 ‘뮬란’을 통해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에 대해 벌이고 있는 인권 탄압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란에 대해 디즈니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디즈니의 침묵은 오는 11일 뮬란의 중국 시장 개봉을 앞둔 것과 관련해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뮬란’에 대한 해외 매체들의 혹평도 쏟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종종 어설프고 즐거움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버라이어티는 “그 어떤 프레임도 독창적이지 않다”고 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도 “류이페이는 주연으로서 충분한 카리스마를 갖췄으나 대본은 그에게 영화와의 관계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스토리도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전반적으로 백인의 시선에서 만든 동양영화라는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또 ‘뮬란’의 탄생 설정과 주요 캐릭터에 변화를 줬고, 디즈니 특유의 느낌보다는 차이나 머니가 투자된 흔한 중국 무협영화 같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기존 애니메이션을 기대하고 볼 관객이라면 실망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
전 세계적인 논란은 국내까지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뮬란’ 상영중단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지난달 31일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 영화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뮬란’은 개봉 전 시사회 없이 17일 개봉한다. ‘뮬란’ 측은 OTT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사전 공개가 된 작품인데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바이러스 전파 위험성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지만, 각종 논란을 의식해 행사를 취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알라딘’으로 한국 극장가에서 누적 관객 1,272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흥행 성적을 낸 디즈니가 내놓은 논란 덩어리 ‘뮬란’이 국내에서 어떤 흥행 기록을 써낼지 이목이 쏠린다.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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