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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망했으나 망가지진 않는 삶을 위하여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2015년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어느 대학 영문과 조교수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을 그린 ‘스토너’는 소위 ‘망한’ 소설이었다. 지난 1960년대 신문에 단신으로 소개됐으나 초판도 다 못 팔고 절판됐다. 스토너는 평범하지만 진지한 사람이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순수한 기쁨을 품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연애가 나쁘게 끝나’고 마는 인간관계의 법칙 속에서도 사랑했다. 그러나 요령 없는 스토너는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점차 ‘망해간다’. 교수사회에서는 ‘왕따’가 되다시피 했고 사랑은 떠나보내야 했으며 딸은 고요한 절망 속에 알코올의 늪에 잠겨간다. 평범한 인간 ‘스토너’의 추락과 절판은 지당해 보였다.



50년 후 반전이 일어났다. 독서가들 사이에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걸작이 있다는 입소문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호기심과 승부욕을 자극하는 이 소문 속에서 ‘스토너’는 부활했다. 스토너에게는 어떤 행운도, 은총도, 환상 한 줌도 없었다. 마치 소설 밖 우리들의 인생처럼 말이다. 그저 단 하루씩 견뎌내는 의지와 진심이 있을 뿐이었다. 작가를 도와 ‘스토너’ 타이핑 작업을 하던 학생은 소설 마지막 장을 타자기로 치며 눈물을 줄줄 쏟았다고 한다. 망해도 망한 것이 아닌 삶이 있다. 상처받더라도 끝내 일어서는 마음이 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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