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생뎐’, ‘우아한 가’ 등 매 작품마다 진정성과 공감성 가득한 연기를 선보여 ‘흥행보증 수표’란 수식어를 얻은 임수향. 그는 지난 주 종영한 MBC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이하 내가예)에서 ‘만인의 첫사랑 오예지’로 완벽 변신해 깊이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불쌍하고 기구한 여자 오예지로 살면서 가슴 절절하고, 눈물 마르지 않는 나날이 없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던 예지는 두 형제와 엄마의 사랑을 통해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깨닫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 최근 서울 강남 논현동에서 만난 임수향은 예지로 인해 매 순간 힘들었지만 예지로 살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전했다.
Q. 작품을 끝낸 소감은?
-늘 모든 작품마다 애착이 많이 가는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감정 소모도 굉장히 많고, 다른 작품보다 더 집중해 임한 작품이어서 떠나보내는데 더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저는 레트로한 감성이 좋았었거든요. 오랜만에 선보이는 전통 멜로 장르에 대해 시청자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걸 과연 좋아해주실지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랑해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보통의 멜로와 구성 면에서 다른 ‘내가예’를 선택한 이유는?
-문학 소설 같기도 하고,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색이 좋았어요. 문어체 대사들이 많아 연기하기 힘들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진 소나기 같은 느낌, 자극적인 소재와 청량한 느낌이 묘하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청순함을 가장한 섹시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Q. 보통 봐왔던 멜로와는 결이 달라서 극에 적응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진 않았나?
-감정선이 전부인 드라마였어요. 묘한 감정과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또 제가 많이 나와서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데뷔했을 때 찾아뵈었던 연기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과 대본 분석도 같이하고, 저도 하던 대로 연기하면 안되겠더라고요. 하루 쉬는 날이 있으면 대본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가, 현장에서 대본을 별로 안 들고 있어도 머릿속에 다 있게끔 대본을 통으로 계속 다 외웠어요. 이번에는 좀 더 다른 작품보다 연기적으로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과몰입이 돼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Q.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많이 났는지?
-이 여자의 삶이 너무 기구해서 감정의 골과 깊이가 너무 깊어서 모든 대사에 눈물이 났어요. 제가 눈물이 많기는 하지만 저 뿐만 아니라 김미경 선생님도 대사를 하다가 눈물이 난다고 많이 말씀하시고, 저랑 환이도 지문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사를 하다 너무 몰입이 되서 눈물 났던 경우가 많았어요. “그게 하고 싶어요 내 인생 망치는 일”이란 환이의 대사 지문에는 눈물이 없었어요. 그런 식으로 저희가 울음이 터져버렸던 신이 많아요. 너무 많이 울었고, 감독님도 촬영하시면서 많이 우셨어요.
Q. 새드엔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작할 때부터 엔딩은 알고 있었어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들의 사랑을 통해서 예지가 ‘나는 정말 사랑받은 존재이구나’를 깨닫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예지 입장에서 보면 새드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중년의 예지와 환이가 매일 만나던 역 앞에 앉아 서로를 응시하면서 끝나면 어떨까? 그런 열린 결말을 생각해보기는 했어요. ‘중년의 환희와 재회했다’고 딱 정의를 내리기보단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장소에 가슴 따뜻한 추억을 갖고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랑받았던 그 시절을 그 두 사람이 응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끝나면 어떨까 생각해봤죠.
Q. 극 중 예지에 과몰입하면서 일상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어렵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이니까 매일 우는 연기를 하니 기력이 없었고, 예지를 떠나보내는 게 좀 힘들었어요. ‘신기생뎐’ 할 때는 호프집도 못 갔어요. 매일 꽃꽂이하고 앉아 있었어요(웃음). 거기에서 빠져나오는데 1년이 걸렸어요. 근데 지금은 이제 실제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방법을 활동하면서 체득했고, 옛날보다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Q. 예지를 사랑해준 배우들과의 호흡은?
-너무 좋았어요. 석진 오빠와는 부부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의지되고 부부같이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지수는 동생인데 같이 장난도 치고 그래서인지 편안하면서 묘한 긴장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두 분한테 너무 감사해요. 드라마가 혼자만 잘하면 되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그 감정의 깊이를 같이 해줘야지 시너지가 나는 그런 작품이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Q. ‘내가예’를 통해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변했는지?
-가질 수 없어도, 상대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항상 추억을 미화시키는 편이에요. 20대의 추억이 많은데 내 시간,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좋았던 것만 기억하려는 것 같아요. 한때는 격렬하게 사랑했었던 사람인데 원수처럼 되는 게 가슴 아파서 친구로 남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 연애할 땐 좀 안정감을 추구해요. 제가 연예계 생활하면서 불안정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주변에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저한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좋기는 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진이 같은 사람이 좋았겠지만 지금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환이 같은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
Q. 사연이 많은 주인공, 감정의 깊이가 깊은 작품을 주로 하셨는데 추후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코믹이 해보고 싶어요. 밝은 것, 속 시원한 걸 하고 싶어요. 전작 ‘우아한가’에서도 사연이 많았지만 시원시원하긴 했어요. ‘응답하라’와 같은 류도 좋고, 제 2모국어로 부산 말을 할 줄 알거든요(웃음). 생활감이 강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사실 여러 가지 연기법들이 있지만 캐릭터화·동기화되서 하는 그런 것들이 있고, 나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면서 연기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제가 많이 보이는 그런 느낌, 생활감이 가득가득해서 임수향의 매력이 섞일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Q. 데뷔 7년 차이자 올해 30대 여배우가 된 소감 한마디
-14살 때부터 꿈이 바뀌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처음 연기 시작할 때는 시켜만 주면 다 씹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현실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고,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라고 생각하는 시점도 있었고, 이 일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 시기를 지나고 보니 이 일을 하는 게, 연기할 때가 너무 좋아요. ‘평생 할 수 있겠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행복한 게 목표인데 이것보다 더 행복한 일을 찾지 못했어요. 지금 와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것,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에요. 느리지만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어요. 그게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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