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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금융] 금소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힐까

9년간 표류 끝에 내년 3월 본격 시행

빅테크-금융사 간, 소비자-금융사 간

형평성 모두 해결해야 하는 과제 직면





지난 2011년 이후 9년간 고배를 마셔온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내년 3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소법이 9년간 표류하는 동안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뿐만 아니라 빅테크와 기존 금융사 간 ‘기울어진 운동장’까지 다뤄야 할 정도로 시장 상황은 급변했다. 과연 금소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빅테크-금융사 기울어진 운동장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금소법이란 지난 2011년 처음 발의돼 9년 만인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법이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끝에 법이 빛을 보게 됐다.

특히 공개된 시행령에는 금융당국이 빅테크와 금융사 간 규제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들이 포함됐다. 금소법은 개별 금융업법으로 규율하던 규제를 기능별 규제로 전환해 금융 소비자의 보호를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핀테크와 금융사 간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던 점을 고려해 동일 기능, 동일 규제를 최대한 구현했다는 게 금융위 측 설명이다.

이에 따라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도 직판업자, 대리·중개업자, 자문업자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하게 될 경우 금소법에 등록한 후 법 적용을 받게 된다. 기존 금융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금융 규제를 우회해온 빅테크가 금융 규제를 적용받게 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위 측은 “네이버라는 이름만으로 금소법 적용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면서도 “만약 네이버나 다음이 온라인 대출 비교 플랫폼을 영업하게 된다면 금소법상 대출모집인으로 등록해 대리·중개업자로 금소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시행령에서 ‘네이버통장’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소비자가 대리·중개업자를 직판업자로 오해할 수 있는 광고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도입했다. 앞서 네이버는 미래에셋과 제휴를 맺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네이버가 직접 만든 상품으로 오해하게 해 논란이 됐다. 대리·중개업자의 금융상품 광고는 금지하되 직판업자가 승인한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온라인 사업자가 대출 모집인 1사 전속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대신 자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운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비자 이해 상충을 방지하는 알고리즘 탑재를 의무화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네이버가 쇼핑과 동영상 검색 알고리즘을 인위적으로 바꿔 자사 상품이나 콘텐츠를 검색 시 최상단에 노출했다고 본 점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이해상충을 방지하는 알고리즘으로 영국의 사례를 참고할 방침이다. 영국은 대출금액, 기간, 이자율에 따라 오름차순, 내림차순으로 상품 정렬, 가격 비교시 상품 광고 게시 불가 등의 규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또 중개업자가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사한 금융상품에 관해 통상적으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금액’으로 정의했다.

금융사- 소비자 기울어진 운동장
금소법의 원래 취지는 소비자가 금융회사와 대등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도록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청약철회권, 위법계약해지권 등 새로운 권한을 소비자에게 부여했다. 대출, 보험, 펀드 등을 계약을 체결한 뒤 청약을 철회할 수 있는 청약철회권은 대출성·보장성 상품에 모두 적용하되 투자성 상품의 경우에는 비금전신탁계약, 고난도 펀드 등에 적용된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이내, 보장성 상품은 15일 이내, 투자성 상품은 7일 이내 행사 가능하다. 금융사의 위법 행위가 없어도 행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계약한 상품에 위법 행위가 있어 계약 이후 해지할 수 있는 위법계약해지권도 새로 도입된다. 금융상품 유형과 상관없이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요구할 수 있다. 계약이 종료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사가 상품판매 시 투자자 성향 파악 등 고객평가를 형식적으로 운영하지 않도록 평가기준을 신설하고 그 기준에 따라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판매업자는 상품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 펀드 등을 자산운용사 등 제조업자가 아닌 은행, 증권사 등 직판업자가 판매하는 경우에는 상품설명서를 직판업자가 작성해야 한다. 판매업자의 ‘상품숙지의무’를 도입하고,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권유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금융사가 이같은 사항을 위반할 경우 투자액·대출금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된다. 거래 규모가 클수록 제재 강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또 금융상품에 심각한 손실이 발생하고 손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될 경우 금융위원회가 금융사에 금융상품 판매 제한명령을 발동할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금융 피해자와 금융사 간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위원회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분쟁조정위원을 관련 전문가 단체로부터 2배수 이상 추천받는 절차를 신설하고 분조위에 소비자·금융 관련 단체 추천 위원이 동수 참여하게 된다. 피해자 규모, 조정가액, 선례 유무 고려해 분조위에 의무적으로 상정한다.

당장 업계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다가 금융사에 지나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펀드를 1조원 판매하면 수수료가 많아야 100억원 수준인데 과징금은 최대 5,000억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최근 사모펀드가 문제되니 감정적으로 추진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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