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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조선시대 매품팔이·똥장수는 얼마나 벌었을까

■조선잡사

강문종 외 3인 지음, 민음사 펴냄

조선 말기 풍속화가 김준근이 그린 매품팔이/사진=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돈 삼십 냥을 줄 것이니 나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너라.”

“삼십 냥을 받아 열 냥 어치 양식 사고 닷 냥 어치 반찬 사고 닷 냥 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 하리라.”

돈으로 ‘매 맞을 몸’을 거래하는 이 안쓰러운 대화는 조선 시대 한글 소설 ‘흥부전’의 한 대목이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당시 일용 노동자 하루 임금은 약 스무 푼. 한 냥이 100푼이니, 곤장 맞는 조건으로 받는 돈 서른 냥은 무려 150일 치의 임금에 해당했다. 어림잡아 반년 생활비다. 소설에서 꾸며 쓴 허구가 아니다. 조선 시대엔 실제로 ‘맞아야 사는 사람’, 이름부터 안쓰러운 ‘매품팔이’가 존재했다. 흥부가 제안받은 조건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파격이었다. 조선 시대 법전에 따르면 곤장 100대는 벌금 일곱 냥으로 대체가 가능했다. 부잣집 양반네들에는 푼돈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대신 맞고라도 벌어야 할 큰돈’이었다. 벼랑 끝 서민들이 감내했던 이 극한 직업은 한 개인의 고달픈 인생을 넘어 당시 사회의 생활, 풍습, 법규, 문화 등을 보여준다.

신간 ‘조선잡사’는 젊은 한국학 연구자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직업 67개를 발굴·연구해 엮은 책이다. 조선 시대 하면 떠올릴 법한 선비·농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어의·군관 같은 ‘익숙한 직업’은 배제했다. 대신 시장·뒷골목·주막 등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었을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의 밥벌이를 통해 치열했던 누군가의 삶을 불러낸다. 책 제목의 ‘잡’을 ‘잡다하다’는 의미의 한자 ‘잡(雜)’과 직업을 의미하는 영어 ‘잡(Job)’ 두 가지로 함께 표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 풍속화가 김준근이 그린 염모/사진=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일하는 여성들’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존여비 문화가 팽배했던 시기, 여성이 종사한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저자들은 ‘조선 여성은 집안일만 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싶다’는 바람으로 7개의 여성 직업을 소개했다. 예컨대 옷감을 염색하는 일은 염모(染母)라는 여성 기술자가 맡았다. 고된 육체노동인 염색이 여성 업종으로 분류돼(?) 있던 것은 여성이 입을 옷에 남성이 손대는 것을 꺼리는 당시 사회상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염모는 비단 열 필(200m)을 염색해야 겨우 삼베 한 필을 받을 수 있었다. 중노동의 대가치고는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먹고 살기 막막한 가난한 여성들은 이마저도 감지덕지했다.

조선시대 사람을 업거나 짐을 지고 시내를 건넌 뒤 품삯을 받던 월천꾼. 조선 말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에는 월천꾼이 여인을 등에 업고 걷는 모습이 담겨있다./사진=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몇백 년 전 존재했던 직업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소매치기 ‘표낭도’, 모조품 유통업자 ‘안화상’, 남을 속여 이득을 보는 ‘편사’, 기생 관리자 ‘조방꾼’, 과거시험 대리 응시자 ‘거벽’ 등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현대 사회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분뇨 처리업자 ‘똥장수’, 연고 없는 시체를 묻어 준 ‘매골승’,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 ‘착호갑사’ 등은 위험하고 힘들고 더럽지만, 다수의 쾌적한 삶을 위해 필요한 ‘조선판 3D 업종’이라 불릴만하다.



누군가의 생존, 또 누군가의 탐욕 속에 탄생하고 스러져간 수많은 직업의 이야기는 색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다시 보게 한다. 책은 ▲일하는 여성들 ▲극한직업 ▲예술의 세계 ▲기술자들 ▲불법과 합법 사이 ▲조선의 전문직 ▲사농공상 등 총 7부로 구성돼 있다. 67개 직업이 각각 5페이지 이내의 분량에 삽화와 함께 소개돼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1만 8,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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