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이 파낸 최고 보물은 배우 이제훈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주로 반듯하거나 진지한 배역 이미지로 익숙했던 그가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도굴’에서는 사기꾼 기질 다분한 도굴꾼 강동구로 변신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 성격도 바뀔 만큼 인물과 작품에 푹 빠져 지냈다”는 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도굴’은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가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삽질의 달인인 삽다리(임원희) 등 전국의 고수(?)들과 함께 땅속에 숨어있는 유물을 파헤치는 범죄오락영화다. 이제훈이 연기한 강동구는 흙 맛만 보고도 유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천부적 기질을 타고난 도굴꾼. 한없이 가볍고 잔망스러운 모습 뒤에 아픈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촘촘하고 흥미로운 시나리오는 단숨에 이제훈을 사로잡았다. 어릴 때부터 ‘진품명품-출발 비디오여행’으로 이어지는 TV 시청이 주말 일상이었던 그에게 보물, 도굴이란 소재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본인과 전혀 다른 성격의 강동구였다. 훔친 불상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껄렁껄렁 걷는 모습부터 조직 폭력배 앞에서 보물 값을 흥정하며 깐죽거리는 표정까지. 그 스스로 “냉정하게 따지면 실제 내 성격에서 강동구 같은 부분은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선사하는 재미와 호기심은 이제훈의 걱정을 저 멀리 날려보냈다. “(시나리오) 흐름만 따라가도 충분히 재밌을 것 같았어요. 강동구 역시 가볍지만, 목적이 분명하게 있는 인물이라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고요.” 도굴은 스토리만 보면 뻔할 수도 있는 권선징악의 뼈대를 가져간다. 허 찌르는 반전이나 복잡한 서사는 없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배우들의 유쾌한 합이 어우러져 웃고 즐길 범죄오락 영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캐릭터에 다가설수록 현실에서의 인간 이제훈도 변해갔다. 능청스럽고 넉살 좋아진 그를 보며 지인들이 ‘왜 이래’ 하고 의아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평소엔 말없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하는 편인데, 제가 들떠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은 ‘어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영화 촬영은 본인도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개구쟁이로 돌아가 “마음껏 까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재밌는 시나리오 덕이었을까. 흙먼지 마시며 땅을 파는 고된 ‘몸 연기’도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극 중 이제훈은 무한 삽질로 땅굴을 파고, 차오르는 물속에서 거친 몸싸움도 벌인다. 그는 “육체적으로 힘든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과 마음이 즐거웠다”고 전했다. 함께 연기한 조우진, 임원희 등과의 찰떡 호흡도 이번 영화가 준 큰 선물이다.
코로나 19로 관객과의 만남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올 초 그의 또 다른 출연작인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 여파로 극장 개봉이 미뤄지다 OTT 플랫폼에서 공개됐다. 이번 개봉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가슴 두근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유다. 그는 “이번 시즌에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할 일”이라며 “도굴을 계기로 관객들이 다시 활발하게 극장을 찾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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