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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노무현 신공항' 밀어붙일 것 같은 오거돈의 후임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정치권, 김해신공항 폐기만 기다린 듯 속전속결

盧대통령 지시 사업, 돌고돌아 14년만에 또 변경

내년 부산시장 선거 앞두고 여야 모두 표 계산만

조국 "노무현 국제공항!" 등 벌써부터 정치 공방

검증위, '백지화' 한 적 없는데..."가덕 연결 말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서울경제DB




정부와 여당이 동남권신공항으로 추진하던 ‘김해공항 확장 안’을 사실상 폐기하고 ‘가덕신공항’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안팎에서 들끓고 있다. 사실상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노린 ‘정치적 선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더니 이제는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진의와도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형 국책사업이 정치 논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결정되면서 아직 삽도 뜨지 않은 국제공항의 이름을 두고도 ‘노무현 공항’ ’문재인 공항’ ’김대중 공항‘ ‘오거돈 공항’ 등 벌써부터 각종 설전이 오가는 분위기다. 새 국제공항은 영남권 지역 사회의 숙원 사업이었던 만큼 해당 이슈가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불명예 퇴진 논란까지 잠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연합뉴스


정치권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해신공항 백지화

김해신공항 검증위는 지난 17일 1년여 간 진행된 검증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식 발표했다. 검증위는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은 국제공항의 특성상 각종 환경의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제한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공항 시설 확장을 위해서는 부산시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제처 유권해석을 인용하며 김해신공항 안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규정했다. 활주로 신설을 위해 공항 인근의 산을 깎는 문제를 두고 국토교통부가 부산시와 협의하지 않은 점을 거론한 것이다.

검증위의 이날 결론은 정치권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검증위 발표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전제로 한 ‘가덕신공항특별법’을 발의해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다분히 겨냥한 전략이었다.

이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건 야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대구·경북 의원들의 내부 반대 기류는 이었지만 지난 20일 부산 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민주당보다 먼저 발의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국민의힘 부산시당의 당론으로 채택된 것이라 의미가 크다”며 이례적으로 야당의 판단을 반겼고, 심지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까지 언급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검증위 발표 직후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 부처는 검증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계획을 면밀하게 마련해 동남권 신공항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와 여야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속전속결로 대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盧대통령이 지시한 사업, 정권 바뀔 때마다 뒤집혀

문제는 이 사업이 지난 14년간 결론을 수도 없이 바꿔 온 사업이라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동남권신공항 추진을 앞다퉈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언제나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기존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안도 4년 전 우여곡절 끝에 겨우 나온 결론이었다.

검증위에 따르면 동남권신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는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지시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7년 12월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며 사업 조기 추진의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정작 취임 이후 실무 검토 결과를 토대로 이 사업안을 백지화했다. 2011년 3월 20명으로 구성된 입지평가위원회가 사업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대구·경북이 지지하는 밀양 지역과 부산·경남이 지지하는 가덕도 모두 사업 최소요건인 50점에 입지가 미달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2012년 11월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2016년 6월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실시한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평가 결과’에서 압도적 1위는 김해공항 확장안이 차지했다. 당시 2위는 대구·경북 등이 지지한 경남 밀양 안이 차지했고, 부산이 지지한 가덕도 신공항 안은 꼴찌인 3위에 그쳤다. 이때만 해도 동남권신공항 문제는 결국 더 이상의 이견 없이 김해신공항 안으로 귀결되나 싶었다.

지난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앞줄 가운데) 당시 대표가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후보지를 찾아 부산시당 당원들과 ‘가덕신공항’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PK 교두보 확보’... 文정부 들어 다시 떠오른 ‘가덕도’

가덕도가 다시 주목받게 된 건 이 지역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 강력한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을 외면할 수 없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부산·울산·경남만을 영남의 유력한 교두보로 삼아 온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 계산도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동남권 관문공항과 공항복합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였던 2016년 총선 당시 부산 지역 유세에서 이미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적으로만 판단한다면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만들 수 있다”며 “국회의원 5명만 뽑아준다면 대통령 임기 중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직접 가덕도를 찾아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는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대로 용역이 진행된다면 부산시민이 바라는 대로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6·13 지방선거로 당선된 민주당 출신 부·울·경 단체장들도 김해공항 확장안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국토부와 부·울·경 지자체는 지난해 6월 이 문제를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낙연 현 민주당 대표가 국무총리이던 시절인 같은 해 12월6일에는 총리실 산하에 검증위가 출범했다. 위원장은 김수삼 한양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1년여의 검증 기간이 끝난 뒤 국민들이 받아든 결론은 지난 17일 검증위가 발표한 그대로였다.

오거돈(왼쪽) 전 부산시장이 지난해 5월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부울경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결과 대국민보고대회 사전 간담회 및 보고서 전달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에게 김해신공항 계획안 타당성 검증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노무현 국제공항!” vs 김근식 “차라리 오거돈 공항”

정치권이 검증위의 결론을 ‘김해신공항 백지화 및 가덕신공항 추진 가능’으로 받아들이면서 동남권신공항 문제는 곧 정치적 공방 거리가 됐다. 특히 공방은 가덕도신공항 추진이 기정사실이라도 된 듯 공항 이름 작명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포문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열었다. 안 대표는 19일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며 “검증위 발표가 나자마자 여당에서 ‘노무현 공항’이라는 명칭까지 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비난 기꺼이 수용하여 공항 명을 지으면 좋겠다. ‘가덕도 노무현 국제공항’(Roh Moo Hyun International Airport)!”이라고 적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가덕도 공항에 굳이 정치인 이름을 붙이겠다면 ‘김대중 국제공항’에 한 표를 던진다”며 “경상도에 있는 공항에 ‘김.대.중.’ 이름 석 자를 붙이면 그 지긋지긋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 등의 의견에 이번엔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반박했다. 그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으로 보궐선거가 생기고 그 선거용으로 가덕도(신공항을) 살려내는 것이니 차라리 ‘오거돈 국제공항’을 적극 고려해 보라”고 비꼬았다. 같은 당 강민국 의원도 “김포국제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인천국제공항을 김영삼 공항으로 명명하자”고 조롱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가덕도 공항은 문재인 대통령 각하 선물이니까, 그냥 ‘문재인 공항’이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박재호 의원이 지난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글도 다시 화제가 됐다. 박 의원은 당시 김해신공항 백지화와 가덕신공항 유치를 주장하며 “가덕도 신공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업입니다”라고 썼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항 전망대에 있는 항공기 모형. /연합뉴스


‘김해신공항 백지화 ’로 결론 낸 건 정말 맞나?

정작 검증위원들 사이에서는 검증위 결론을 정치권이 가덕신공항 추진과 무리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새 나왔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검증위는 기존 김해신공항 안의 문제만 지적했을 뿐인데, 정치인들이 선거만 노리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됐다.

총리실에 따르면 검증위는 지난 9월25일 전체회의를 열고 법제처 유권해석에 이상이 없다는 전제 아래 ‘일부 문제만 보완한다면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역할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위원 20명 중 13명이 참석해 과반인 12명이 이 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11월10일 법제처가 ‘공항 부지 주변 산을 방치하려면 부산시와 협의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결과는 달라졌다. 이틀 뒤인 12일 김 위원장과 각 분과위원장 4명 등 총 5명은 9월25일 의결한 내용과는 다소 다른 ‘근본적 검토’를 골자로 한 발표문을 최종 확정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해신공항안 유지에 대해 이견이 빚어지면서 일부 위원들의 의견만으로 결론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제처 유권해석 이후에도 상당수 위원들의 의중은 여전히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을 보완하는 쪽에 쏠려 있었다는 의혹이었다.

다만 달라진 검증위의 최종 발표문에도 ‘가덕’ ‘밀양’과 같은 단어는 전혀 없었다. ‘입지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도 없었다. “김해신공항 계획안은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입지 변경의 가능성도 열어둔 게 전부였다. 검증위원들도 결론 발표 이후 각종 언론을 통해 ‘김해신공항 폐기·백지화로 결론을 낸 게 아니다’ ‘김해신공항을 보완하기 위해 재시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였다’는 등 정치권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놓았다.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 /연합뉴스


검증위원장 “김해신공항 검토 결과, 가덕도 연결 옳지 않아”

검증위 발표의 진의는 김수삼 위원장이 20일 내놓은 입장문을 통해 비교적 더 명확해졌다. 김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발언을 인용한 조선일보 보도를 반박하는 형태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김해신공항의 적정성 검토를 가덕신공항과 연결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언론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김해신공항을 보완하라는 말이었다”는 취지로 그의 발언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공식인터뷰가 아니고 비보도를 전제로 한 통화를 공식 취재로 보도하고 내용을 왜곡해 심히 유감”이라며 “기자회견에서 밝힌 발표문 이외의 입장은 전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을 검토한 것을 가덕 등 특정 공항과 연결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권의 과잉 해석을 경계했다. ‘백지화’나 ‘폐기’ 등의 용어는 이번에도 일절 쓰지 않았다.

정치권의 가덕신공항 추진에 이견을 내던 검증위원들은 정치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일단 추가 발언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검증위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결과 대다수는 아예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일부는 연락은 닿았으나 발언조차 하기 싫다며 모든 답변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A위원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멋모르고 말을 했다가 그렇게(곤란하게) 돼 답변을 더 이상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총리실의 한 핵심관계자는 “9월 전체회의 때 20명 중 13명만 참석한 것은 강의나 부모 봉양에 따른 외출 자제 등이 이유였다”며 “정족수나 의결 방식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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