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의 항의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독일 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이 영원히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될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베를린시 미테구의회의 프랑크 베르테르만 의장(녹색당)은 전체회의에서 “성폭력 희생자를 추모하는 평화의 소녀상 보존을 위한 결의안이 다수결로 의결됐다”고 밝혔다. 녹색당과 좌파당이 공동 결의한 해당 결의안은 평화의 소녀상이 미테구에 계속 머물 수 있는 방안을 구의회의 참여하에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명령을 철회하고 원래 내년 8월 14일이었던 설치기한을 내년 9월 말까지로 6주 연장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베를린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독일 공공장소에 세워진 첫 번째 소녀상이다. 하지만 설치 후 일본 측이 독일 정부와 베를린 주정부에 항의하자 미테구청은 지난 10월 7일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베를린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현지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가 행정법원에 철거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자 미테구는 철거 명령을 보류, 지난달 7일 철거명령 철회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테구의회는 소녀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함의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틸로 우르히스 좌파당 구의원은 의안 설명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2차 세계대전 중 한국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성폭력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쟁이나 군사 분쟁에서 성폭력은 일회적인 사안이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로,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면서 “평화의 소녀상은 바로 그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는 소녀상의 영구설치를 위한 논의 과정상에서 이런 구조적 문제가 주목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평화의 소녀상이 우리 구에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바라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표결에는 구의원 31명이 참여해, 24명이 찬성했고, 5명이 반대했다. 반대표는 기독민주당과 자유민주당에서 나왔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영구설치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는 것은 베를린에 소녀상을 영원히 존속시키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며 “소녀상을 계기로 그동안 전범 국가인 독일에서 은폐됐던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미테구의회 앞에는 한국인과 독일인 30여 명이 모여 소녀상 영구 설치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소녀상이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회에 참여한 여성운동가 이나 다름슈테터씨는 “10년 전 평화축제에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고, 나서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용기에 깊이 감명받았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는 한일간의 문제이기보다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문제로, 이를 국가 간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여성의 존엄을 되찾을 기회를 빼앗는 일”이라고 말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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