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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기업 숨통 조이는 규제와 징벌 '쌍칼춤'

서정명 산업부장

'數의 정치'로 규제3법·징벌3법 강행

3%룰·다중대표소송은 경영권 위협

기업지원 늘리는 경쟁국들과 달리

우리는 '기업=巨惡' 뒤틀린 프레임

눈먼 사람들의 눈먼 정책 안타까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소환한다. 위기 때는 옛 성인에게서 지혜의 길을 찾게 마련이다. 제자 플라톤은 ‘국가’라는 고전에서 소크라테스의 경구를 담았다.

“수호자는 눈먼 사람이 아니라 날카롭게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앎이 결여된 판단은 모두 창피스러운 것이다. 눈이 멀었으면서도 길을 바로 가고 있다고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이념과 이상만 좇아 정책을 수립하는 지도자와 정책 입안자를 꼬집은 말이다. 오늘날 규제(regulation)와 징벌(punishment)이 쌍칼 춤을 추는 한국 경제를 경고하는 듯하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70석 이상이라는 수(數)의 정치를 앞세워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강행했다.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하도록 하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개별 3%로 제한하도록 했다. 외국 투기 펀드들이 한국 기업을 공격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내용 보완과 시행 유예를 읍소했던 기업들의 목소리는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기업 이야기를 듣겠다는 약속은 결국 허언(虛言)에 불과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미국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가 LG그룹을 위협하고 나섰다. 앞으로 계속 규제 3법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다.

화이트박스에 정통한 미국 소식통은 17일 서울경제를 통해 “화이트박스는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의 계열분리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규제 3법으로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고 외국 자본의 공격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애써 떠벌리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앞으로 3%룰, 다중대표소송, 일감 몰아주기 범위 확대 등 기업 발목에 족쇄를 채운 법망을 뚫고 전방위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위정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봐야 하는데 눈먼 사람들의 눈먼 정책으로 기업들이 치명적 버그에 감염될 판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술 더 뜬다. 이번에는 ‘징벌 3법(중대재해기업처벌,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과시키려 안달이다. 안전사고 예방 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은 소홀히 한 채 기업인 처벌에 방점을 찍고 있다. 7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한 기존 산업안전법이 있는데도 이번에는 최소 2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거악(巨惡)’이라는 뒤틀린 프레임에 매몰돼 기업의 투자와 고용 의지를 자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진위(眞僞)가 아니라 호오(好惡)에 따라 정책을 만들려는 유혹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글로벌 경제는 사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 경쟁국은 국부(國富) 창출을 위해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등 자국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금융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규제를 대폭 풀어 기업의 야성적 충동을 일깨우고 있다. 시대 흐름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는 한국 상황과는 천양지차다.

우리 기업은 지금 생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위정자들은 착시 효과에 빠져 ‘이만하면 우리 기업은 괜찮다’는 오판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3·4분기까지 매출액 상위 100대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 증가한 35조 9,000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반도체 효과를 누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영업이익은 21.9%나 크게 빠졌다.

‘우리 경제는 양호하다’고 분식(粉飾)을 할 때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내년에도 장기화하면 우리 기업은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물로 바람을 잡으려고 하고 체로 물을 옮기려고 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정책은 바로 잡아야 한다.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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