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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경제성의 무기' 어뢰

1878년 러시아 어뢰정, 적함 첫 격침





1878년 1월 14일 저녁, 흑해 남동부 바투미 인근 해역. 러시아 어뢰정 2척이 오스만튀르크 무장 증기선 인티바흐(163톤)를 어뢰 두 발로 침몰시켰다. 처음으로 자기주항식 어뢰가 적 함정을 격침한 순간이다. 물론 이전부터 비슷한 무기는 있었다. 중국이 14세기에 ‘바다의 지뢰’를 깔았다는 기록부터 ‘증기선의 아버지’ 로버트 풀턴이 18세기 말 긴 활대에 기뢰를 달았다는 사료가 남아 있다.

방어용이던 기뢰를 공격용 어뢰로 발전시킨 주인공은 영국인 로버트 화이트헤드. 1866년 추진 장치가 부착된 어뢰를 만들었다. 해군력이 약했던 오스트리아가 100발을 구매하기 시작한 후 각국은 구매 경쟁을 벌였다. 영국(254발) 다음으로 많은 250발을 구입한 러시아는 오스만튀르크제국과의 전쟁에 어뢰를 투입, 최초의 격침 기록을 세웠다. 승전한 러시아는 1878년 3월 바투미 지역을 할양받았다. 그해 12월 이 지역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이 태어났다. 어뢰가 없었다면 스탈린은 튀르크의 신민으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문을 연 어뢰전의 성과는 독일이 이어받았다.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잠수함 U보트로 연합국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남자 주인공 게오르크 폰 트라프 대령도 화이트헤드의 손녀인 아가테와 결혼한 후 1차 세계대전에 잠수함장으로 참전, 누적 4만 5,669톤 격침 기록을 세운 역전의 용사다. 전쟁 후 상처하고 스물세 살 연하인 22세 수녀와 재혼하는 전후의 얘기가 이 영화의 소재다.



일본도 어뢰 우등생으로 손꼽힌다. 청일전쟁에서 어뢰로 청국 군함 4척을 잡고 1904년 대한해협해전에서는 어뢰 300발을 발사해 러시아 전함 11척을 수장시켰다. 1878년 최초의 어뢰전을 성공시킨 러시아 마가토프 함장은 이때 전사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도 속도가 빠르고 사거리가 긴 93식 산소어뢰로 연합국을 괴롭혔다. 미국은 마크 13식 어뢰로 일본에 맞섰지만 성능 부족과 신뢰성 저항에 시달렸다. 태평양전쟁 중반 이후 일본 산소어뢰의 한계점이 드러나고 미국 Mk 14 어뢰가 개량되면서 전장의 주도권은 미 해군으로 넘어갔다.

Mk 14 어뢰 개량형은 1980년대까지 일선을 지켰다. Mk 14 사례는 명품 무기의 성립 조건을 말해준다. 세월을 거치며 단점이 보완돼야만 무기는 제 기능을 발휘한다. 국산 어뢰에 대한 억측과 비난보다 보완을 위한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한 게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신뢰성을 담보로 하는 무기는 구성원의 지지를 양분 삼아 발전한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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