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밤입니다. 친구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대통령 취임 8일 뒤인 1933년 3월 12일 이렇게 시작하는 라디오 연설로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첫 조치인 ‘부실 은행 정리’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뒤 은행에 돈을 맡기라고 당부했다. 얼마 후 금융권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루스벨트는 라디오 연설을 위해 참모들과 벽난로 옆에 둘러앉아 초안을 다듬고 암기할 때까지 큰 소리로 읽곤 했다고 한다. 그러자 언론인 해리 부처가 ‘노변정담(fireside chat·爐邊情談)’이라고 이름 붙였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은 격식 차린 담화문이나 훈시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끼리 난롯가에서 나누는 친밀한 대화였다. 라디오는 당시 세상과 개인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체였다. 황금 시간대에 30분가량 진행된 노변정담은 최고의 청취율을 보였다.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중 총 30여 차례의 노변정담이 있었다. 루스벨트는 일반 국민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직접 쓰기도 했다. 또 하반신이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타면서까지 미국 전역을 돌며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힘든 시기에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언덕이 됐다. 루스벨트는 두 갈래의 큰 위기를 극복하면서 미국을 세계 제1의 초강대국이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정치 초년인 39세에 소아마비 진단을 받은 그는 뼈를 깎는 재활 훈련 끝에 부축 없이 겨우 걸을 정도가 되자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뉴욕주지사를 거쳐 네 번이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취임사에서 “통합에 영혼을 걸겠다”고 약속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을 벤치마킹하려 하고 있다. 바이든은 최근 코로나19 위기로 직장을 잃은 캘리포니아 주민과 통화하며 실직의 아픔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표하고 정부의 긴급 구호책을 설명하는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며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 국정 운영은 거꾸로 됐다는 지적이 많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루스벨트처럼 국민들과 소통해 ‘오기의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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