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법관이 정치권력 등 사법부 외부로부터 독립해 재판해야 한다는 의무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여당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된 것도 전 정권 입맛에 맞춰 헌법 103조를 위반하는 판결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임 판사 탄핵 이후 헌법 103조의 사법부 독립성 문제를 지적받는 인물은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 사이에서 불거진 문제는 사태의 서막이었다. 임 부장판사가 제출한 사표를 김 대법원장이 반려하면서 언급한 이유는 “정치적인 상황을 살펴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정치적 외풍을 막아야 하는 김 대법원장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정치적인 상황’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후 여당이 임 부장판사의 탄핵을 주도해 가결시킨 것을 감안할 때 김 대법원장의 ‘정치적 상황’ 언급은 매우 부적절했다.
김 대법원장와 청와대는 인사를 통해 긴밀하게 교류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잇따라 법원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차례로 자리를 옮긴 김형연·김영식 전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점을 고려하면 두 전직 판사가 청와대와의 교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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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을 맡고 있는 윤종섭 부장판사가 6년 차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유임된 것이 이슈화됐다. 통상 2~3년 주기로 순환 근무하는 법원 인사를 고려하면 특이한 인사였다. 이 때문에 임 전 차장 측이 재판부 기피까지 하면서 피하려 했던 윤 부장판사가 해당 사건을 마지막까지 책임지게 하려고 대법원이 사실상 ‘재판부 배당’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헌법상의 사법부 독립성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김 대법원장이 논란을 피하려면 정치가 아닌 헌법에 기반해 판단해야 한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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