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짜리 조카에게 '물고문'까지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거센 가운데 이 사건에 피의자들의 신상 공개가 가능한 살인죄가 적용될지 주목된다.
이 사건 피의자인 피해자의 이모 A(40대)씨와 이모부 B(40대)씨는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경기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호송 차량에 탑승하는 과정에서 대중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취재진 앞에 서 "미안해요"라고 짧게 답한 뒤 법원으로 향했다.
A씨 부부는 지난 8일 오전 자신들이 맡아 돌보던 10살 조카가 말을 듣지 않고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파리채로 마구 때리고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의 범행 수법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얼굴을 공개하라", "왜 범죄자들의 얼굴을 가려주느냐", "미안하면 얼굴이라도 드러내라"는 등 질타 섞인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이들에게 적용된 아동학대치사 혐의로는 신상 공개 심의위원회 자체를 열 수가 없어 신상 공개가 불가능하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앞서 경찰은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2009년) 이후 2010년 4월 특강법에 신설된 '8조 2항(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을 근거로, 흉악범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기로 했다. 같은 해 6월 경찰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의 얼굴 사진을 처음으로 직접 찍어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특강법에 아동학대치사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 관련 규정은 없다. 특강법이 말하는 특정강력범죄는 살인, 미성년자 약취·유인, 2명 이상이 합동해 저지른 강간,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4조(단체 등의 구성·활동) 등이다. 이럴 경우에는 개별법에 따라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5조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때에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로 지난 4일 도합 4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조주빈은 이 법에 따라 신상이 공개된 최초의 사례이다.
반면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결국 A씨 부부에 대한 신상 공개 심의 여부는 특강법이 정하고 있는 강력범죄, 즉 살인죄 적용 여부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부검 감정서가 아직 나오지 않아 이번 사건 피해자의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A씨 부부가 자행한 '물고문' 등 학대 행위로 볼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미필적 고의란 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범행을 저지른 것을 말한다. 이 사건에서는 수차례의 폭행과 '물고문' 등의 범행을 했는데, 어린 아이를 상대로 이 같은 행위를 했을 경우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기관에서 아동학대 치사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살인죄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의견에 무게를 싣는다. 아동학대치사 혐의 적용으로 크게 논란이 된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검찰이 이 사건 첫 공판에서 살인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삼고 기존의 아동학대치사 혐의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돌리는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살인죄를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에 대한 살인죄 적용 여부는 숨진 아동에 대한 부검 결과와 A씨 부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향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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