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0년 4분기 가계 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 신용 잔액이 1,726조 원에 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가계 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을 더한 ‘포괄적 가계 빚’을 말한다. 국내 가계 빚이 사상 최대라는 점도 걱정하게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다.
지난해 연간 늘어난 가계 빚만 125조 8,000억 원에 이른다. 2016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특히 3분기와 4분기 두 분기 연속으로 각각 44조 원 넘게 불어났다. 당국의 규제에도 가계 빚 증가 속도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 부채 급증은 무엇보다 폭발적인 부동산 자금 수요 때문이다. 4분기에만 주택담보대출이 20조 원 이상 더 불어났다. 코로나19에 따른 생활고가 이어진 가운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 헛발질에 젊은 층까지 앞다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에 나서면서 대출 수요가 몰렸다. 여기에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 열풍까지 가세했다.
가계 부채가 급증할 수록 우려되는 것은 저금리 시대 마감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2일 1.37%로 치솟았다. 지난해 2월 이후 1년 만에 최고치다. 우리나라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22일 1.92%로 약 1년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월가도 국채 금리 상승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며 금리 오름세를 예측하는 분위기다.
금리가 오르면 필연적으로 가계의 부담이 커진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 대출의 약 70%가 변동 금리여서 금리 상승 시 부담이 가중된다. 가계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 ‘빚 폭탄’이 터지고 이는 곧바로 은행 부실과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코로나19 지원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대출 만기 연장 등을 하는 것은 부실만 더 키울 수 있다. 이제라도 철저하게 옥석을 가려 지원하는 등 가계 부채 연착륙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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