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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이 무형유산을 만날 때

[문화재의 뒤안길]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의 은행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충남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의 한 마을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마을 산의 형세가 사슴의 머리와 닮았고, 바위 샘터는 사슴이 놀다가는 신성한 곳이라 여겨 주민들은 이곳을 녹간(麓澗)마을이라 부른다. 천 년 세월을 훌쩍 넘은 높이 23m, 둘레 9m의 웅장한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집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이룬 곳이다.

이 노거수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2008년 필자가 마을에 가서 은행나무를 조사할 당시, 한 어르신께서 “영목(靈木)이 확실한 법적 지위를 누려야 마을이 살 수 있고, 마을의 제사를 모셔야 주민들이 살 수 있다”며 나무·마을·사람을 한 덩이로 여기는 주민들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셨다.

전설에는 538(성왕 16)년 사비천도를 전후해 좌평 맹씨(孟氏)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신라, 고려가 망할 때마다 칡넝쿨이 이 나무를 감아 올라가 그 징후를 알렸다고 한다. 목신(木神)으로부터 조선의 건국 이야기를 엿들은 과객이 공을 얻고자 이성계를 찾아갔다가 오히려 의심을 사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 일본인이 나무를 베려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했다 하며, 해방될 무렵에는 남향의 큰 나뭇가지가 통째로 부러져 영감(靈感)을 보여줬다는 설까지 이 은행나무를 둘러싼 역사의 줄기들이 실로 무성하다.



천연기념물 제320호로 지정된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은행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녹간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 은행나무 앞에서 제의를 올리며 한 해의 풍년과 제액초복을 기원한다. 제사용 술 대신 나무 옆 샘물을 받아 올린다. 제의가 끝날 무렵 제관은 대동 소지에 불을 당기며 “참석하신 여러분의 운수대통을 올린다”고 고한 후 하늘을 향해 주민들의 소망을 띄워 보낸다. 제의를 마치면 모두가 한데 모여 샘물로 지은 메를 김에 싸서 음복한다.

녹간마을 은행나무에는 주민들의 자연관, 역사관, 신앙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화재청은 이처럼 전국에서 열리는 자연유산 민속행사들을 발굴하고 지원해 생태환경의 보호뿐만 아니라 이에 담긴 공동체문화와 무형유산의 가치를 지켜가는 데 힘쓰고 있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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