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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경제단체의 혁신을 기대하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정부와 대립각·의존 타성에 주도력 상실

勞에 기울어진 법 가속에도 속수무책

노사관계 능동적 리더십 발휘하려면

전문역량 갖추고 여론 지지 끌어내야





지난 10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신임 부회장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방문이 잠깐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경총의 입장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경총이 한동안 경사노위의 모든 회의를 보이콧해왔던 터라 그런 기대도 있었지만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과의 대화는 겉돌았다. 노사 협력과 나라 경제를 위해 노동계에 기울어진 사회적 대화를 균형 있게 바꿔야 한다는 경총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경직적인 태도는 최근 공정 경제 3법, 노동관계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에 불리한 법안이 연이어 국회를 통과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지난해 손경식 경총 회장이 송년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가 노조 힘만 키워주는 바람에 노사 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할 때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경총의 대정부 태세 변화는 좀 더 복잡한 전략적 포석을 깔고 있을 수도 있다. 지난해 경총은 출범 50주년을 맞아 종합 경제 단체를 지향한다는 비전을 선포하고 공정 거래에서 산업 규제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능 부전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경총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총은 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재계가 같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좀 더 타협적이었고 상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성과도 냈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기업에 힘든 법안들이 통과했고 경제 단체들이 너무 무력했다”며 재계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경련과의 통합을 공식 거론한 것이다. 전경련은 반발했고 재계의 반응도 별로였다.

경총의 광폭 행보와 경제 단체 통합 제안에 재계의 호응이 뜨겁지 않은 이유를 일본 사례와 비교해 설명할 수도 있다. 경총은 일본경영자단체연맹(닛케이렌)과 유사한 기능과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1948년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에서 노동 문제를 전담할 기구로 닛케이렌을 만들었듯이 1970년 전경련은 노사 분규 대응 조직으로 경총을 띄웠다. 그러나 50여 년의 노사 관계 성적표는 성공과 실패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닛케이렌이 출범할 당시 일본 노사 관계는 압도적인 노조 우세인데다 뉴딜 정책의 여파로 미군 사령부도 대놓고 노조 편을 들었다. 재계는 스스로의 힘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어가며 노조를 설득하고 원칙을 하나씩 세워가는 수밖에 없었다. 닛케이렌은 1960대에 노조 우위를 꺾었고 1970년대에 생산성 임금 원칙을, 1980년대에는 일본형 노사 협력 시스템을 완벽하게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들어서며 노동 관련 전담 기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공감대 속에서 2002년 게이단렌과의 통합이 성사됐다. 성공적인 54년의 역사였다.



이에 비해 경총은 지난 50년간 노사 관계를 주도하기보다 정부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노동계는 늘 정부를 상대하려 했고 경총은 뒷전이었다. 이런 타성이 경총의 기초체력을 약화시키고 사용자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주도성을 키우지 못한 원인일 수 있다. 선진국의 사용자단체들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며 노사 자치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들은 인력과 재정·전문성 면에서 정부에 결코 밀리지 않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경총의 1년 예산은 150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대기업 노조 하나의 예산과 비교될 정도다. 부설 연구 기관은 명패만 있고 전담 인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나 학계와의 소통조차 원활치 못한 실정이다. 이런 역량으로 거대 노조 세력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정부조차 노조를 편들고 나서니 무력감을 호소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노사 관계 전환을 위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한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노사 협력 우수 기업 사례를 분석해보면 성공 요인은 하나다. 최고경영진이 기업의 사활을 걸고 노사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조보다 먼저 변했고 눈물겨운 솔선수범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총은 한국 노사 관계의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경총 스스로 한국형 노사 협력 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와 여론의 지지를 획득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종합 경제 단체도 전경련과의 통합도 공감을 살 수 있다.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 상생과 연대의 노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경총 혁신의 일환이어야 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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