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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정이품송과 맺은 600년 부부緣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충북 보은군 서원면 서원리 소나무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

한뿌리 두 줄기서 뻗은 많은 가지들

멀리서 보면 마치 여자가 치마 두른듯

세월의 무게 견디며 상흔 남아있지만

여전히 '서낭신'으로 대접받는 신목

'정부인 소나무'로 인격화 한 것은

최고의 예우…생명체 인식 철학 담겨

충북 보은 속리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52호 ‘서원리 소나무’




?성(聖)과 속(俗)은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이 사는 곳 자체가 성이자 속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곧 성이고, 사람이 살기 싫은 곳은 곧 속이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俗離山)은 속세와 떨어진 산이고, 속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도 속세와 떨어진 곳에서 살아간다. 속리산 자락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법주사가 자리 잡고 있다. 법주사는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곳 사찰 중 한 곳이다. 법주사의 가치는 법주사 일원이 명승 제61호일 만큼 자연 생태가 온전할 뿐 아니라 국보 3점과 보물 12점, 그리고 도지정문화재가 25점일 만큼 인문 생태의 보고라는 데 있다.

속리산 자락에는 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은 속리 정이품송’과 천연기념물 제352호 ‘서원리 소나무’가 살고 있다. 그런데 보은 속리 정이품송에 대한 관심은 아주 높지만 서원리 소나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소위 정이품송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살고 있는 반면 서원리 소나무는 관광객이 많지 찾지 않는 외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이품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는 1962년이지만 서원리 소나무는 1988년에 지정된 것만 봐도 두 천연기념물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오색인문학2


서원리 소나무는 일명 ‘정부인 소나무’라 부른다. 정부인은 조선 시대 외명부 중 문관·무관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정·종 2품의 위호(位號)다. 이곳 소나무를 ‘정부인 소나무’라 부르는 것은 정이품송과 부부 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나이도 각각 600살이고 나무의 높이도 15m이다. 그런데 두 소나무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정이품송은 줄기가 위로 쭉 뻗은 반면 가지는 많지 않다. 서원리 소나무의 가지가 정이품송의 배나 길다. 그래서 정이품송은 남성적인 모습이고, 서원리 소나무는 여성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소나무를 부부라 생각했다.

삼가천 계곡 옆 길가에 살고 있는 서원리 소나무의 모습은 정이품송에 비해 상당히 건강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느라 군데군데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원리 소나무의 품이 넓은 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생긴 두 개의 줄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기운 소나무의 줄기 중 키가 큰 줄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일부 가지는 썩어 떨어진 상태다. 그래서 가지가 떨어진 곳은 하늘이 보일 만큼 휑하다. 더욱이 소나무의 가지들이 처져 대부분 의족에 의존하고 있는 신세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여자가 치마를 입은 듯하다.



서원리 소나무는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는 신목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곳 소나무를 ‘서낭 소나무’라 부른다. 서낭 소나무의 ‘서낭’은 서낭신을 뜻한다. 서낭신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서낭신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모시는 나무는 대부분 소나무다. 서원리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서낭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제사의 흔적은 소나무 둘레의 작은 돌이다. 작은 돌은 함부로 소나무에 접근하지 말라는 징표다.

서원리 소나무 옆 자귀나무에 핀 꽃


내가 이곳을 처음 찾았던 날 콩과의 갈잎중간키나무 자귀나무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정이품송과 정부인 소나무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곳의 자귀나무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자귀나무는 부부의 화목을 의미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자귀나무를 부부의 상징 나무로 여기는 까닭은 마주나는 잎이 밤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귀나무의 이 같은 모습을 보고 합혼목(合昏木) 혹은 합환목(合歡木)이라 불렀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원에 자귀나무를 즐겨 심는다. 이 같은 의미를 지닌 자귀나무 잎 사이로 정부인 소나무를 바라보면 이 소나무의 가치가 한층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인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한 그루 나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인 소나무’는 사군자처럼 식물에 대한 인격화를 의미한다. 식물에 대한 인격화는 인간의 식물에 대한 최고의 대우이자 식물을 자신처럼 생명체로 인식한 철학이다. 나무에 대한 인격화의 선례는 중국 진시황제가 산둥성 태산 아래의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라 명명한 경우다. 오대부는 진나라의 20등작(等爵) 중 9등급에 해당한다. 9등급은 봉록 600석 이상의 관리들에게만 수여한 관작(官爵)이다. 600석은 6,000말에 해당하는 봉록이다. 정이품송과 정부인 소나무의 위상은 중국 진시황제가 하사한 벼슬보다 높다. 서원리 소나무처럼 나무에 관직을 수여한 전통은 ‘수목문화(樹木文化)’의 최고에 해당한다. 나무를 인격체로 여기느냐의 여부는 앞으로 인류의 생존 여부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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