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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

임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참고 일하는 것 미덕인 세상 지나

韓, OECD중 유일 상병수당 없어

'아파서 쉬어도 소득보장' 제도화 절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가혹한 시절이 있었다. 아파도 참고 일한 대가는 많은 분의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골병들어 고달픈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 치명적인 장애를 감내해야만 했던 산재 노동자들, 365일 가게 문을 열고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동네 사장님들. 성장을 위해 아픔을 견뎌온 세월은 우리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또 가족과 사회에 파괴적이고 후진적인 규범을 유산으로 남겼다. 아파도 일하는 것을 근면으로 포장한 ‘근로’의 규범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국가 발전의 훈장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러면 누가 일하느냐”는 주장에 더 공감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그나마 소위 ‘좋은 직장’에 다닌 사람들은 아프면 쉴 수 있는 유급병가제도의 혜택을 누린 반면 그렇지 못한 직장이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아파도 쉴 수 없는 것이 내 탓인 양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몸을 혹사할 수밖에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파도 쉬지 않은 것이 감염의 원인이 되고 기업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제발 아프면 쉬라”고 이야기한다. 당연한 인권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임에도 부정됐던 것이 결국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되자 이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지만 그것마저도 소중할 수밖에 없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질병이 발생하면 두 가지 위험 부담에 노출된다. 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 부담이 그 하나이고 일을 못 하게 돼 발생하는 소득 상실에 의한 부담이 다른 하나다. 우리나라도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같이 의료비는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 상실에 대해서는 기업에서 유급 휴가를 주거나 민간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해결 방안이 없다. 그래서 아파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아파서 발생한 소득 손실은 의료 보장의 성과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소득 손실을 보장받을 길이 없는 사람들은 아파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치료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꼭 필요한 입원 서비스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외래나 약국에서 간단한 처방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퇴원 후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활 서비스도 활용하기 어려워 건강이 악화하는 사례가 많다. 결국 아파서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보장해주지 못하면 치료와 재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의료 보장의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은 치료비에 대한 보장뿐 아니라 소득 손실을 상병수당제도와 같은 공적 제도를 통해 보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돼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타인의 삶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공유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이기주의를 떠나 폭력이다. 대다수 OECD 국가가 당연히 시행하고 있는 상병수당제도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인 한국에서 여전히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시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불평등의 심화가 한국 사회의 불안정성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상병수당제도는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정말 몸이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 상병수당제도가 그 해답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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