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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스크럼' 美·유럽 기술패권 본색…韓은 '기업=적폐' 주홍글씨

[韓 기업 규제족쇄 풀어라…좁혀오는 글로벌 포위망]  

각국 정부 화끈한 돈풀기에 기업은 '통큰 투자' 화답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산업 '팀 플레이' 나서는데

韓은 법인세 치이고 ILO 비준 등에 박혀 '경영 몸살'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기술 패권을 주도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민관이 똘똘 뭉치고 있다. 그간 개별 기업의 자율적 성장을 우선으로 치며 국가 개입을 꺼려왔던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존이 걸려 있는 기술 패권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각오 아래 ‘메이드 인 아메리카’ 또는 ‘메이드 인 유럽’ 등으로 기존 정책의 궤도를 완전히 수정했다.

특히 정부가 전폭적인 기업 지원을 약속하고 대상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 확대로 화답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가 정조준한 산업은 모두 한국이 수십 년에 걸쳐 육성해놓은 미래 먹거리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선거용 기업 규제 입법과 근시안적 산업 정책에 매몰돼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혁신 기업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산업 규제를 풀어주고 산업 생태계 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혜안이 정치권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민관이 전략적 협업에 나선 곳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1차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500억 달러(약 56조 4,500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제조가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며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한 지 얼마 안돼 이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전기차 산업 진흥을 위해 1,740억 달러(약 196조 4,460억 원)를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계획에 포함됐다. 그가 지난 2월 반도체를 포함해 희토류·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문제를 포괄적으로 점검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만큼 추가 지원책도 예상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쌈짓돈을 풀어 화끈한 지원을 약속한 정부에 화답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분야 공룡으로 꼽히는 인텔이다. 인텔은 그간 역점을 두지 않았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생산 역량을 크게 높인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텔이 막대한 유지비와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설비를 줄이고 칩 설계 중심의 ‘가벼운’ 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깨버린 발표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장려 정책이 인텔의 전략을 수정하게 만든 제1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금은 동맹국 기업의 투자도 자극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밀월 관계는 미국·대만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애리조나에 120억 달러(약 13조 5,480억 원)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팹리스(설계 전문 업체) 대비 절대적으로 취약한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재건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만이 호응하는 모양새다. 함께 손을 맞잡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삼성전자도 향후 10년간 1조 원가량의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텍사스주 정부의 제안에 공장 증설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미국보다 늦었지만 기업 지원의 적극성을 놓고 따지면 EU도 만만치 않다. 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며 오는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20%로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현실 가능성을 떠나 현재 10%인 시장점유율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포부는 반도체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투자를 위한 자금은 지난해 7월 마련한 6,725억 유로(약 894조 2,502억 원) 규모의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에서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 투자 규모가 1,500억 달러(약 169조 3,500억 원)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U는 완성차 기업을 중심으로 보조금과 같은 정책 드라이브도 걸고 있다. 폭스바겐과 볼보는 EU의 적극적인 친환경 차량 생산 지원에 힘입어 전기차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전기차 산업에) 투자하고, 투자하고, 또 투자해야 한다”며 “21세기에 경제 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 정부와 국회는 기업들의 몸을 무겁게 만드는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부 여당의 시선이 바뀌지 않아 민관 협력으로 ‘2인3각’ 체제를 구축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지만 중소기업 육성에 집중할 뿐 국가 산업 전체의 판을 재설계하는 전략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되레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노동관계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줄줄이 통과되면서 기업들은 당장 국내 사업에서의 리스크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세 부담이 높은 조세 구조 역시 부담으로 꼽힌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리는 등 직접적 조정뿐 아니라 세액공제 혜택이 줄어들며 기업의 총부담 세액은 2016년 43조 원에서 2017년 51조 원, 2018년 61조 원, 2019년 67조 원으로 늘어났다.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싸워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마당에 비용 부담만 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등도 우리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한하는 요소로 꼽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떤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연쇄적으로 긍적적인 파생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정부가) 고민이 필요하다”며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규제 역시 필요하지만 적용 과정에서 기업이 사업 자체를 못하게 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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