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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내칼럼
[만파식적] 켈로부대




1950년 8월 말 북한군은 부산까지 공격하기 위해 전투 역량을 낙동강 전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서울을 타격해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인민군 수중에 있던 팔미도 등대를 차지해야 했다. 인천의 경우 조수나 암초 등 해안 조건이 열악해 등대로 불을 비춰야 야간 상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군 3명과 켈로부대원 3명으로 구성된 특공조가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에 투입됐다. 디데이인 9월 15일 오전 1시 45분 등댓불이 인천 앞바다를 밝혔고 이를 신호로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실은 261척의 연합군 함대는 무사히 인천만에 상륙할 수 있었다.

켈로부대 명칭은 미국 극동사령부 한국연락사무소(KLO·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1948년 미국이 대북 정보 수집 등을 위해 조직한 특수부대로 북한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북한군으로 위장해 첩보 수집, 요인 암살, 시설물 파괴 등 비밀공작 활동을 펼쳤다. 켈로부대는 중공군이 점령했던 화천발전소 탈환 작전에도 투입됐다. 당시 현장에 배치된 중공군의 대포와 전차가 유엔군의 눈을 속이기 위한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하지만 위장을 위해 계급과 군번도 없이 활동해야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는 대부분 ‘잊혀진 영웅’이 됐다. 간부 일부는 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지만 부대원 상당수는 이등병 등으로 재입대해 이중 복무하는 고충까지 겪었다.



정부가 ‘6·25전쟁 전후 적진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13일 공포해 6개월 뒤 시행된다는 소식이다.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켈로부대 부대원과 유족 등이 정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1인당 1,000만 원 내외의 공로금 액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땀 흘린 군인들에게 늦게나마 보상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군인을 제대로 예우해야 철통같은 안보 태세 확립이 가능하다. 굳건한 안보가 평화를 지키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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