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30)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810만 달러)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경훈은 17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매키니의 크레이그 랜치 TPC(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8개, 보기 2개로 6언더파 66타를 보탰다. 최종 합계 25언더파 263타를 적어낸 이경훈은 2위 샘 번스(미국·22언더파)를 3타 차이로 따돌렸다. PGA 투어 데뷔 후 80번째 대회 만에 거둔 첫 우승이다. 우승 상금은 145만 8,000 달러(약 16억 4,600만 원)다.
이경훈은 이번 우승으로 한국 선수 역대 여덟 번째 PGA 챔피언(통산 19승째)이 됐다. 앞서 한국 선수 우승자로는 8승을 쌓은 최경주(51), 3승의 김시우(26), 2승씩을 거둔 양용은(49)과 배상문(35), 1승씩을 올린 강성훈(34)·임성재(23)·노승열(30)이 있다.
이날 번스에 1타 차 단독 2위로 경기를 시작한 이경훈은 번스가 첫 홀에서 보기를 범한 덕에 곧바로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어 2·3·4번 홀 3연속 버디 등 초반 6개 홀에서 버디 4개를 잡아내며 단독 선두로 나섰다. 이때 공동 2위와의 타수 차이는 3타가 됐다. 8번(파4)과 9번 홀(파5)에서 버디와 보기를 주고받은 이경훈은 12번 홀(파5)에서 1타를 더 줄이며 우승을 향해 순항했다.
하지만 날씨가 심술을 부렸다. 경기 중반부터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이경훈은 16번 홀(파4)에서 잠시 위기를 맞았다. 드라이버로 티샷한 볼이 잘 맞았음에도 페어웨이에 생긴 물웅덩이 탓에 223야드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 홀의 1라운드 평균 드라이버 샷 거리는 292.4야드였다. 퍼트를 하려고 할 때 낙뢰가 치면서 경기가 약 2시간 20분간 중단됐다. 경기가 재개된 뒤 이경훈은 보기를 범해 2타 차 추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17번 홀(파3)에서 130야드 티샷을 홀 1.2m에 붙여 1타를 곧장 만회했고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는 2온에 성공한 후 버디로 우승을 자축했다.
그린 주변에서는 아내 유주연(32) 씨와 최경주·강성훈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경훈은 아내, 최경주와 차례로 축하의 포옹을 나눴다. 이경훈은 “모두에게 긴 하루였지만 인내심과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며 흔들리지 않았던 비결을 설명한 뒤 “우승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경훈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지난 2015년과 2016년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한국오픈을 2연패한 선수다. 2015년에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다. 일본에서도 2승(2012년 세가사미컵, 2015년 혼마투어월드컵)을 거뒀다.
이경훈은 ‘아시아 강자’로 통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16년부터 3년간 PGA 2부 투어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2018년 2부 투어 상금 랭킹 5위에 올라 2018~2019시즌 정규 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임성재가 PGA 투어 데뷔 동기다. PGA 투어에 합류한 후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지 않아 한동안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던 이경훈은 2월 피닉스 오픈에서 1타 차 준우승을 차지하며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번에 고대하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해 가을 아내가 ‘축복이(태명)’를 임신한 것도 이경훈의 마음가짐을 변하게 했다. 오는 7월 아빠가 되는 이경훈은 평소 “가족이 한 명 더 생기는 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집중력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피닉스 오픈 준우승 때도 “축복이가 큰 힘이 됐다. 자랑스러운 아빠이자 든든한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한국 선수들과 각별한 인연도 이어가게 됐다. 배상문이 2013년 정상에 오른 데 이어 2019년 강성훈, 그리고 이번에 이경훈까지 세 명의 한국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강성훈은 11언더파 공동 47위, 김시우는 10언더파 공동 55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