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주택공사(SH)뿐 아니라 민간 건설 부문에서도 홈네트워크가 적법하게 시공된 사례가 드물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설계사나 감리자 등은 물론이고 건축 전 과정을 면밀히 감독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관계 부처마저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부적법 시공을 걸러낼 장치로 건축 심의를 하고 있으나 통상 교통·건축·환경영향평가 등이 중심이라 홈네트워크 등 통신 부문은 살펴보는 시늉만 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심지어 통신 부문에 정통한 심의위원이 없는 지자체도 많다.
현장 전문가들은 지자체 심의 이후 허가 단계에서도 홈네트워크가 적법하게 시공됐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건축주로부터 제출 받은 도면을 기반으로 홈네트워크 적법 시공 여부를 검토하는 건축·공동주택·정보통신과에서 해당 기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관계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홈네트워크 설비 시공 시 한국산업표준(KS) 인증이 필수냐’는 지자체 문의에 전혀 무관한 ‘KC 인증’을 받으면 된다는 ‘동문서답’식 안내를 하기도 했다. KC 인증은 전자파 검출 기준치에 관한 것이다. 정확한 유권해석으로 혼란을 줄여야 할 정부 부처가 홈네트워크 설비 적법 시공과 관련이 없는 안내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국의 감독이 느슨하다 보니 건축 업계도 비용을 줄인다며 설계·감리 단계에 통신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를 대신 투입하기 일쑤다.
당국·건축계가 손을 놓은 사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 됐다. 에어컨·도어락 등의 교체 후 홈네트워크와 연동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령에 따라 통일된 인터넷 프로토콜이 적용됐다면 겪지 않았을 문제다. 영문을 모르는 주민들은 사설 업체에 추가 비용을 내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통신 설계 전문가는 “관련 규정에 무관심한 지자체와 규정을 지키는 데 드는 각종 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며 “관계 부처에도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지만 대규모 손해배상 역풍이 두려운 것인지 애써 문제를 외면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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