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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구글을 꿈꾸며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사진 제공=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 주말 남성용 가방을 샀다. 외부 행사 때 빈손으로 다니며 악수를 청하던 전임 원장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여성복은 웬만한 휴대전화나 지갑을 가볍게 넣을 곳이 없다. 게다가 평소 물건들을 많이 챙겨 다니기에 빈손으로 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여성 비서실장을 임명할까도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정무적 보좌가 중요하다는 인사 원칙을 두고 적임자를 찾고 보니, 그는 남성이었다. 그에게 여성용 가방을 들게 할 수는 없었다.

유관 기관에 취임 인사를 다니던 초기 며칠 동안 새로 산 가방을 비서실장에게 맡겼는데 정말이지 그 가방이 마음에 안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냥 평소 들던 여성용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기로 작정했다.

사택으로 퇴근하면서 슈퍼마켓을 찾으면 장바구니까지 들게 된다. 기관장으로서 위엄을 갖추려면 일상과 감정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간부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다행히 취임 이후 1년여 동안 직원들은 내 방식을 잘 받아들여주고 있다. 때로는 시장바구니까지 들고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여성 기관장을 우습게 보는 눈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비전 제시와 위기 관리라는 기관장 업무 본질에 내 방식대로 전념하고 있다.

최초 여성 원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여성 기관장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같은 역량이라면 여성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기관을 운영하면서 또 하나의 의미를 더 자주 발견한다. ‘다름’에 대한 폭넓은 포용과 ‘남’에 대한 깊은 배려다.



취임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를 때 직원들이 발 받침대를 놓아주었다. 키 작은 원장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직원들에게도 이 세심한 배려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환자 관점을 놓치지 않기를 강조했다. 많은 일은 바란 대로 가고 있다. 처음에야 기관장이 강조하니 어색해도 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름에 대한 용인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일상이 될 것이다.

조직원들이 다른 ‘성’의 기관장을 받아들였다면 다음번엔 또 다른 특성의 기관장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가진 자가 베푸는 호의가 아니라 당연한 의무로 여길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수용이 조직의 특성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상상력을 실행으로 옮기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원주 심사평가원 사옥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네모반듯한 기존 공공 기관과 달리 세모와 오각형이 곡선과 어우러졌다. 많은 이들이 이 건물을 종종 자연과의 융합이라는 콘셉트로 지어진 구글 신사옥에 빗대곤 한다. 건물 모양새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에 참여해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구글 같은 조직을 꿈꾼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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