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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누구를 위한 퇴직연금 운용 방안인가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디폴트옵션과 투자일임계약 부작용 불보듯

충분한 준비 후 근로자 위한 방식 추진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활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투자업권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과 투자일임계약을 밀어붙이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따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된 금융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다. 투자일임제는 확정급여형(DB)의 자금 운용을 자산운용기관에 아예 맡기는 제도이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명과 암의 양면을 살피면서 부작용에 충분히 대비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 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실적배당형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장기적으로”라는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평균 근속기간은 매우 짧고 이직 때마다 대부분 퇴직연금을 해지하는데, 2019년에는 무려 90만 명 정도가 해지했다. 심지어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중도에 적립금을 인출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요국은 적립금의 장기운용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먼저 완성하고 디폴트옵션을 도입한다.

디폴트옵션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의 전문성도 중요하다. 과거 주식시장이 좋을 때마다 금융기관들은 위험자산의 투자비중을 확대하면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정부는 그들의 주장을 조건없이 받아들였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비록 실적배당형의 수익률이 높더라도 원리금 보장보다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경제주체는 당연히 원리금 보장을 선호한다. 실적배당형 중심의 디폴트옵션의 도입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익률이 원리금보장의 금리보다 낮으면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의 자신감과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적립금의 장기운용이 가능하고 금융기관의 전문성이 월등히 우월한 선진국에서 조차도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 디폴트옵션은 수많은 소송에 휘말린다. 적립금의 장기운용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고 전문성은 취약하다. 심지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심한 한국에서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구제를 위한 장치는 마련되어 있는지 고민스럽다.

장기적으로 디폴트옵션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혹여 무리하게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더라도 준비상태가 취약한 현실을 인정하고 당분간은 사전지정운용의 유형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근로자를 위해 금융기관들을 경쟁시키는 것은 무조건 좋다. 원리금보장형을 포함시키면 원리금보장의 금리도 인상될 수 있으며, 실적배당형은 이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달성해야 선택받게 되는 경쟁적인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후 적립금의 장기운용을 위한 근퇴법이 제도적으로 완성되고 금융기관의 전문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면 그리고 실적으로 증명된다면 그때는 당연히 원리금보장형을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

디폴트옵션보다 자산운용에 대한 금융기관의 자율성이 더 확대되는 투자일임계약은 더 만만의 준비가 필요하다. 혹여 투자일임계약을 도입하더라도 금투업권에만 허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금융시장에서 은행과 보험업권이 금투업권보다 전문성이 낮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근로자를 위해 금융기관들 간 경쟁을 시키지 않고 굳이 특정 업권에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려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법은 규제에 불과하다.

디폴트옵션과 투자일임계약은 사업자가 주인이 아닌 본인을 위해 의사결정하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상존한다. 당연히 부작용을 방지할 방안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 두 제도가 지닌 태생적인 문제와 대처방안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두 제도를 만능으로만 포장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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