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25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은 전례 없이 폭등했다.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집값을 잡아 서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선의가 되레 집값 급등을 불러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교수인 백 전 실장은 “소득 양극화보다 자산 양극화가 더 큰 문제”라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그는 “정책은 이상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자칫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 정부가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금 쓰는 것과 국채 발행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부동산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앞으로는 교육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며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계속 폭등해왔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는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였다. 집값 상승 억제 정책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두 정책 모두 성공하지 못했는데, 특히 부동산 정책 실패가 심각하다. 실질적으로 양극화의 가장 큰 요인은 소득 격차가 아니라 자산 격차인데 집값 폭등이 자산 격차를 더 키웠다.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를 고치려던 현 정부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되레 이를 키워버렸고 그만큼 사회 불안 요인이 더 커졌다.
-집값 폭등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부가 시장과 무모한 싸움을 벌인 데서 비롯된 실패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공급이 부족한 반면 수요는 늘었기 때문이다.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이유는 넘쳐 나는 시중 유동성이다. 올해 3월 통계를 보면 광의통화(M2) 잔액이 3,300조 원을 넘고 매달 40조 원 이상 늘어날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 여기에다 은행 금리까지 매우 낮아 늘어나는 유동성이 부동 자금으로 떠돌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 코인 시장까지 가수요를 유발하는 것이다.
-임대차 3법으로 임차인들의 고통이 크다.
△전월세상한제와 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담은 임대차 3법은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동기가 윤리적인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윤리적 동기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가격 통제를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집값이 안정됐는데 뭐가 달랐나.
△이명박 정부 때는 시장과 싸우기보다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시장을 활용한 측면도 있었다. 특히 공급에 대해 확실한 계획을 발표했다. 생활 권역별 대규모 개발, 뉴타운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 표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서민들에게 주택을 싸게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10년간 150만 채를 짓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제시했다. 교육 정책도 집값 안정에 일조했다. 자사고와 외국어고 등 명문 고교를 서울 강북에 많이 유치했고 이를 통해 강남에 대한 부동산 수요를 분산할 수 있었다.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가계 부채가 1,700조 원에 이른다. 증가 속도도 너무 빠르다. 생계형 대출과 자영업자들의 사업용 대출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부동산 대출이다. 지금은 저금리 상황이라 부담이 덜하지만 언젠가 금리는 오르게 돼 있다. 국제 금리가 인상되는데 우리만 낮게 유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정부 관계자가 훨씬 전에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시장에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문제를 더 키운 감이 있다.
-국가 부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공기업 부채와 연금 충당 부채까지 합친 국가 부채는 2,000조 원에 육박한다. 벌써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준으로 커져버렸다. 대한민국이 ‘부채공화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국가 부채 증가에 대해 아직은 재정 여력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맞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데다 대외 개방형 경제여서 국가 신인도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재정 건전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66조 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하고 올해도 15조 원의 1차 추경에 이어 30조 원가량의 2차 추경을 계획하고 있다.
-왜 국가 부채 급증이 방치되고 있다고 보는가.
△정부가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금을 쓰고 국채를 발행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재원도 충분하지 않은데 무상 급식과 무상 교복, 무료 지하철 요금까지 선심 정책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부족한 돈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다 보면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이 발생하고 빈부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앞에서 주고 뒤에서 빼앗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 것인가.
-재정 건전성 악화가 비극적 결말을 부를 수도 있는데.
△재정 건전성 악화로 국가가 몰락한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나. 특히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반면교사의 주요 사례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영토에 높은 목축산업 수준 등을 감안하면 아르헨티나는 못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실제로 20세기 전반까지 세계 7대 강국으로 꼽힌 부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20여 차례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모든 게 페로니즘이라는 포퓰리즘 때문이다. 우리도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이 저조하다.
△소득 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양립 자체가 어려운 모순된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기업 규제를 강화하면 근로자의 주머니가 채워져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정책은 이상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도 보고 결과도 생각해야 한다. 1980년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의 실패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한 미테랑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흡사했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자리는 줄고 고용은 불안해졌으며, 물가가 급등하고 자금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됐다. 결국 미테랑은 중도 좌파 정책을 포기하고 완전한 시장 중심 정책으로 선회한 뒤에야 정권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규범에 따라 탄소를 줄이려면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전력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과 국제 진출에 협력하자는 원전 동맹을 얘기하지 않았나. 원전 해외 진출을 추진하면서 국내에서는 규제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 원전 기술은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다. 한국의 미래 핵심 산업이 될 원전 경쟁력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
-글로벌 산업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결국 인재 싸움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교육이 기업과 사회에서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데 유능한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부동산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앞으로는 교육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을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암기식, 줄 세우기식 교육을 속히 척결해야 한다. 창의적 교육 여건을 만드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에서 ‘36세 0선’의 이준석 당 대표가 탄생했다.
△이 대표의 탄생은 정치 전반에 걸친 변화의 열망이 반영된 엄청난 시그널이다. 공정의 가치가 새롭게 정립되고 정치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공정 가치를 바로세우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역시 교육 혁명이다. 무엇보다 교육 기회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교육이 차별적으로 세습된다면 한국의 앞날은 암담하다.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사회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엄청난 학비가 필요한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부터 손질해야 한다. 능력 있는 학생이라면 부모의 능력과 무관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바른 정치로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통합을 이뤄줬으면 좋겠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짧은 기간에 주요 7개국(G7) 회의에 참석할 만큼 국가 위상을 높였다. 우리 국민이 이렇게 대단한데 그동안 사회가 너무 분열돼 있었다. 이념·세대·계층·지역 간 단절과 반목이 극심하다. 다음 정권의 주요 과제는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해 다양한 시대 변화에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이 더 현실성 있고 결과의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념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이념의 덫에 갇혀 있다. 보수는 이렇고 진보는 저렇고 하는 데서 벗어나 성공적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정권이 5년마다 바뀌면 정책이 확 달라지는 것이 한국 정치의 큰 폐단이다. 새 정부는 전(前) 정부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새 길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시도하는 게 큰 문제를 일으킨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He is…
1956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전북 익산 남성고를 졸업했다. 중앙대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주립 알바니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이화여대 교수가 됐으나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경제 정책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3년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교육 혁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