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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2 한진해운 사태를 우려한다

최석윤 한국해사법학회 회장·한국해양대 교수

국익차원 '공동행위' 허용되는데

동남아 운항 선사 과징금 부과는

해운업 특수성 감안 재검토 해야

최석윤 한국해사법학회 회장




해사법(海事法)은 그 연원이 기원전 2,000여 년 함무라비 법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사법에는 국제법과 국내법이 모두 포함돼 있다. 각국이 별도의 법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전 세계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성으로 인해 국제법적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해양은 전 지구적인 공간이므로 각국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과 분쟁, 나아가 전쟁의 발단이 돼왔기 때문이다. 해운 산업을 대할 때에 보편적인 국제법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먼저 해운 산업의 특수성을 살펴야 한다. 첫째, 해운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전 세계 물동량의 90%를 해운이 담당한다. 국가 간 패권 다툼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스페인·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들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때 전위 부대는 해군과 해운이었다. 미국과 중국, 유럽이 패권을 다투는 중심에도 해운이 있다.

둘째, 산업 파급효과가 크다. 해운 산업이 발전해야 항만, 조선, 금융, 육상 운송 등도 발전할 수 있다.

셋째, 해운은 모험사업이다. 파도와 태풍을 만나 침몰하기도 하고 유가나 세계 경기의 변동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위험한 사업이다. 지난 1980년 초 유가 폭등과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한국의 해운 산업이 치명타를 맞은 적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얼마 전까지도 해운업은 장기 불황 상태였다. 그 와중에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해운 산업의 불확실성이 이렇게 크다.



이 때문에 해운법은 선박 소유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 공통적이다. 선주 책임을 제한하는 대신 보험 제도를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왔다. 또 국익 차원에서 해운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산업적 몰락을 막기 위해 정기 선사 간 ‘운임 등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해운 선진국들인 유럽연합·일본·싱가포르 등에서 모두 그렇다.

우리 해운법에도 제29조에서 외항 운송 사업자의 ‘운임 등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의 법적 근거로 삼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면서도 제58조에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동남아시아 운항 선사들에 5,000억~6,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통보했다. 이는 해운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한 것이며 관련 법률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설사 해운 기업의 공동행위에 절차상 하자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운법이 적용돼야 맞다.

우리는 분단 상태에 살고 있다. 사실상 지정학적으로 육로가 차단된 섬과 같은 지리적 환경에 놓여 있다. 안보 환경도 엄중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해운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담당하고 있다. 동서고금에 해운 산업은 전시에 무기 등 전쟁 물자, 병력, 식량, 의약품 등을 대량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해운이 ‘준(準)안보 산업’이라는 뜻이다.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은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무리한 법 집행으로 ‘제2의 한진해운 파산 사태’가 나서는 안 된다. 공정위는 해운업의 국제적 특수성과 해운법의 입법 취지를 잘 살펴야 한다. 우리 해운업이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달러를 벌어들이는 신성장 동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과징금 부과 방침을 재검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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