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미리 준비해 놓으면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아온 권유리가 드디어 환상적인 요리를 완성했다.
권유리는 지난 4일 종영한 MBN 주말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극본 김지수·박철/연출 권석장)에서 광해군의 후궁 소의 윤 씨 사이에서 난 옹주 자가 수경을 연기했다. 생계형 보쌈꾼 바우(정일우)가 실수로 옹주를 보쌈하며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2일 화상으로 만난 권유리는 “매 작품 애착이 가지만 이번 작품은 수경을 만나고 좋은 감독님, 배우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현장을 나갈 때마다 기대가 됐다”며 종영의 아쉬움을 털어놨다.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한 그는 출연 결정을 한 뒤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잘한 선택이 맞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새로운 장르를 도전한다는 무게가 느껴졌으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단단해졌다.
“사극이라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기도 했고 처음 가보는 공간과 익숙하지 않은 의상, 분장도 어렵고 어색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잘한다는 건 결국 자연스럽게 한다는 뜻이잖아요? 빠르게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나중에는 분장하는 과정이 수경이란 캐릭터에 몰입하는 좋은 도구가 되었어요.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의상·분장·장소·미술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사극의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수경은 높은 지위에서도 사람들의 계급과 상관없이 연대하는 올곧은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옹주라는 위치에 있지만 원치 않은 태생적 한계로 왕실의 권위 아래 갇혀 살던 수경은 보쌈꾼 바우를 만나며 자신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하는 수경의 캐릭터는 권유리의 고민과 연구 끝에 탄생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수경의 비슷한 점을 찾아내며 캐릭터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장르에 갇힌 생각보다는 캐릭터의 접근 방식을 고려했는데, 이게 사극 도전 계기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수경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고민했거든요. 연기가 끝날 때쯤에는 저도 수경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연기했어요. 둘 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니란 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수경은 거짓말을 해도 얼굴에 다 티가 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데다가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당찬 인물이다. 그런 수경의 모습에 매료됐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주체적인 캐릭터에 끌리는 그에게 당돌한 수경의 모습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기를 바라며 성장하고 있는 권유리는 수경처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놓여있다.
“수경이란 캐릭터가 정말 매력 있고 닮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시아버지였던 좌상대감에게 ‘그간 강녕하셨습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온갖 고충을 겪으며 성장한 수경의 자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거라 통쾌함까지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깊이 있는 캐릭터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사실 저도 데뷔한 지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좋고 슬프고 아팠던 일을 많이 겪었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단단해진 주체라 수경의 캐릭터가 이해됐어요. 저도 수경처럼 느리지만 하나하나 성장하고 배워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은 성숙한 캐릭터이기도 한 수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권유리의 소녀시대 활동이 도움을 줬다. 12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고 19살에 데뷔한 그에게 연습생 시절은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던 그의 삶은 남을 배려하며 사는 수경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도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절이 도움을 줬다.
“수경이 감수하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을 저도 소녀시대로 활동하는 동안 많이 느끼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수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액션 합도 소녀시대 활동 때 춤을 익히는 방법과 닮아서 재밌었어요. 짜인 액션 합을 이행하면서 표정 연기를 함께하는 게 춤추는 것과 비슷하더라고요.”
액션 장면에서는 정일우와 신현수 덕에 노하우를 얻었다. 특히 “소복을 잘 추스르며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게 어려웠는데, 두 배우 모두 사극 경험이 있어서 한복을 잘 컨트롤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는 그는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일우 배우가 매 장면 정말 진심을 다해 함께 연기해주셔서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아요. 촬영 전에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적극적인 소통 덕에 좋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감독님도 이런 부분을 많이 존중해주신 덕에 수경과 바우의 호흡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현수 배우도 대협이라는 캐릭터에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중한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저랑 동갑이기도 해서 현장에서 즐거웠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았어요.”
실제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있고, 수영을 좋아하고, 10년 전부터 승마를 배웠지만 취미를 연기에 접목하는 것은 얘기가 달랐다. 무려 열 시간이 넘도록 수중 촬영을 할 때는 다른 배우들에 대한 존경심까지 생겼다고.
“제가 물하고 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물속에서 죽는 연기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4화까지는 소복을 입어야 하는데 흰색 옷은 비치잖아요. 그래서 그 안에 서너 겹 껴입고 스쿠버 슈트도 입고, 거기에 천천히 가라앉으라고 배에 10kg가 넘는 추도 달았더니 정말 무겁더라고요. 자격증이나 수영 실력은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그래도 다음에 하면 조금 더 나은 수중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보쌈’을 통해 확실하게 주연으로 입지를 굳힌 권유리는 더 나은 배우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보쌈’에서 액션의 맛을 제대로 본 덕분에 다음 캐릭터를 위해 다양한 방식의 경험을 쌓고, 특히 더 강렬한 액션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배우는 결국은 몸을 써서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몸을 잘 쓰기 위한 단련을 평소에 많이 하고, 액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무술 같은 것도 배웠어요. ‘미녀 삼총사’에 나오는 루시리우처럼 멋진 액션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거든요. 검술도 배웠고, 전 세계에 많이 계시는 팬분들을 위해 언어도 천천히 배워두고 있습니다. 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아이돌로 대중에 먼저 이름을 알린 권유리는 내년 소녀시대 데뷔 15주년을 앞두고 있다. 멤버들이 각자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만큼 뿌듯함이 크다는 그는 자신도 매력있는 배우로 꾸준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소녀시대 활동은 멤버들과 아이디어 공유하면서 얘기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는 정말 감사하게도 작품을 제안받아서 검토 중이고, 저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길 바라기 때문에 노력 중입니다. 또 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다음이 궁금해지는 배우 유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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