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묻지마 신재생’ 보급 정책으로 1㎿h 기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현물가격이 사상 처음 2만 원대까지 주저앉았다. 태양광 등 신재생사업자에 제공되는 보조금 성격의 REC는 지난 2019년 7월만 해도 현물시장에서 6만 원 후반대에 거래됐지만 급격한 신재생 보급 정책으로 물량이 쏟아지며 2년 만에 가격이 반토막 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발전사들은 장기 계약에 따른 ‘가격 변동 리스크 회피’를 이유로 현물가 대비 2배 이상 높은 고정 거래 가격에 REC를 매입하고 있어 전기 요금 원가 부담은 되레 높아지고 있다.
2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일 기준 1㎿h당 REC 평균 가격은 2만 9,981원으로 관련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2만 원대로 떨어졌다. 2017년 REC 현물가격이 1㎿h당 평균 10만 4,688원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4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났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500㎿ 이상의 설비 용량을 보유한 발전사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판매하는 REC를 구입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비율(RPS)을 맞춰야 한다.
이 같은 REC 가격 추이는 각종 신재생 지원책에 따라 태양광 사업자들이 빠르게 늘어난 반면 REC 매입 수요는 큰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이달 2만 2,739㎿로 2년 전 설비 용량인 1만 5,252㎿ 대비 49% 이상 늘었다.
정부는 신재생 발전 설비를 지난해 20.1GW 규모에서 오는 2034년 77.8GW로 4배가량 늘리기로 한 만큼 REC 가격 하락 추이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 4월 RPS 상한을 기존 10%에서 25%로 높이기로 하는 등 REC 가격 반등을 노렸지만 REC 공급 과잉 상태가 계속되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반면 REC 20년 장기 고정 거래 가격은 현물가격 대비 2배 이상 높게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공단이 4월 내놓은 ‘소형태양광 고정가격계약 매입 참여 공고문’에 따르면 1㎿h당 REC 가격은 7만 1,947원으로 당시 REC 가격(1㎿h당 3만 3,400원) 대비 2배 이상 높다. 정부는 관련 지침 10조 2항에 따라 가격을 산정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비정상적 가격으로 REC 거래는 고정 거래 시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2019년 6월만 해도 금액 기준 전체 REC 거래에서 현물 REC 거래의 비중은 36%에 달했지만 지난달에는 4.9%에 그쳤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고정 거래 비중을 더욱 늘린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RPS를 충족해야 하는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장기 계약을 통해 REC 가격 변동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며 “향후 가격 안정성 유지를 위해 장기 계약 REC 시장 비중을 더욱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비용 보전을 위해 시장가격보다 높게 REC를 매입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실제 현물 REC 가격은 2019년 11월 태양광 사업자들이 손익분기점으로 생각하는 5만 원대가 무너진 후 2년 가까이 하락 추이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도 아직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의 경제성을 넘어서는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하지 못한 만큼 어느정도 수익 보조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탄소 제로 등 글로벌 흐름을 감안하면 신재생으로의 전환이 필수이기는 하지만 탈원전의 빈자리까지 신재생이 메워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며 관련 설비 보급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게 늘었다”며 “특히 REC 장기 거래 가격이 현물 가격 대비 2배 이상 높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신재생 사업자의 수익을 발전사 등 공기업이 보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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