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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매주 벌어지는…한사람 vs 500가구의 대결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최훈 지음, 정미소 펴냄





'아파트 분리수거일에 배출되는 쓰레기의 절반 이상이 오후 7시부터 오후 11시 사이에 집중된다. 가장들이 퇴근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가족 단위로 함께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경비원 한 사람 대 500가구의 대결이 시작된다.'

전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리수거일 풍경이다. 이 상황을 매주 겪어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분리수거일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사방으로 날라 다니는 비닐을 따라 다니느라 초주검이 된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다. 대형 건설사를 퇴사한 후 무역회사를 차렸다가 폐업하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저자가 경비 초소에서 틈틈이 기록한 메모를 풀어낸 책이다.

아파트 경비원으로의 취업부터 만만치 않았다. 만 63세부터는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3개월마다 계약 연장이라는 2차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아파트 경비원은 3개월 짜리 단기 계약직 신분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3년을 일한 저자는 3개월 짜리 근로 계약서를 열 차례 갱신해 온 셈이다.



주 업무는 경비라기 보다 잡일에 가깝다. 빈 집에 남겨진 반려견에 신경을 써야 하고, 이사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처리도 경비원 몫이다. 입주민이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담하기 싫다고 욕을 해도 그냥 자리를 피해야 한다. 입주민과 사소한 분쟁이라도 생기면 연말 정리대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민과의 분쟁은 무조건 입주자 승리로 끝이 난다. 경비원과 문제가 생겨서 입주자가 이사 나가는 경우는 없다. 나가는 쪽은 늘 경비원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을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한다. 경비원 옷을 입는 순간부터 감정이나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물론 경비원의 삶에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월급이 나오고, 4대 보험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주변인들과 관계가 개선되고 가정에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저자는 수없이 실수했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도 한다. 책은 누군가의 거주지인 아파트를 일터로 살아가는 경비 노동자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21년 오늘, 나는 경비원 복장을 하고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아파트 경비원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에게도 마음먹고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던 어느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근무하고 있는 초소에서 밖으로 나가 아파트 단지 담장을 돌아나가면 다시 그날의 그들과 만날 것만 같다. 가끔은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하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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