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와 모더나 간 비밀유지협약에 해당하는 코로나19 백신 공급 세부내용 일부를 공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제조사와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비공개 대상인 사안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부 공개했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이에 대해 항의할 경우 자칫 백신 도입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방역당국은 “월별·주차별 도입 물량은 비밀유지협약에 따른 비공개 대상이며 패널티 위험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유감을 표시했다.
여당 대표가 라디오서 비밀유지 내용 공개…'모더나 패널티 우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8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공급 확약된 물량이 연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연기 물량의 재공급 일정을 논의하는 게 비밀유지협약 대상에서 제외되는
지는 모더나가 논의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모더나는 지난 23일 방역당국에 당초 7월까지 도입키로 했던 일부 백신의 도입이 제조소의 생산 문제로 연기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이에 따라 당초 1,000만 회분으로 계획된 7월 백신 도입 물량이 부족해졌고, 보건복지부 장관 등 방역당국 실무진은 지난 27일 저녁 모더나와 고위급 영상 회의를 진행했다. 이후 한국 정부와 모더나는 백신 공급을 다음주부터 재개하도록 합의했으며, 김부겸 국무 총리는 이같은 사실을 28일 오전 중대본 회의를 통해 공개했다.
문제는 이와 별개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더나 백신의 구체적인 물량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날 오전 KBS 라디오에 출연한 송 대표는 “원래 모더나로부터 25일 75만 도즈, 31일 121만 도즈 등 총 196만 도즈를 받기로 한 게 연기된 것”이라며 백신의 구체적인 도입 예정 물량을 언급했다. 또한 “어제 권덕철 복지부 장관이 모더나 존 로퍼 부회장, 생산 책임자와 긴급히 회의를 해 다음 주에 130~140만 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며 “8월에 850만 도스는 예정대로 들어온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월별·일자별 도입 물량은 명백히 모더나와 정부 간 비밀유지협약에 따른 비공개 사안이다. 때문에 이같은 사안이 공개될 경우 한국 정부는 모더나로부터 패널티를 받을 수 있다.이는 한국 뿐 아니라 모더나로부터 백신을 구입하는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손 사회전략 반장은 “모더나는 어제 저녁 1차 협의를 통해 다음주 바로 물량을 제공하기로 하고 실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물량 수치를 공개하는 데는 후속적인 협의가 필요하고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과정에서 다른 경로로 공개된 것에 대해 중대본도 다소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일정별 백신 도입 물량을 공개하는 것은 명백하게 비밀유지협약의 위반이지만 이번처럼 백신 도입이 계약과 달리 미뤄진 경우 해당 물량에 대한 공개 여부도 협약의 위반인지에 대해서는 모더나와 추가로 상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손 사회전략반장은 ”기본적으로는 계약 물량의 구체적 물량을 밝힐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고 있고 이 물량을 섣부르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패널티 위험을 고려할 때 확정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곳곳에서 협약 위반…전문가 ‘비밀유지협약 내용 공개해야’
정부 고위급 관계자 등이 비밀유지협약에 해당하는 내용을 공개 석상에서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실무진이 해당 언론사에 비밀유지 협약 위배 소지가 있는 자료를 제공해 제약사로부터 항의를 받은 바 있으며, 4월에도 방역 당국이 브리핑 도중 ‘8월 코로나19 백신 국내 위탁생산’ 계획을 관련 기업명을 빼고 언급해 관련주가 요동쳤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현재 비밀유지협약의 기준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안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유지협약에 해당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개별 인터뷰 등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실수가 발생하는 것.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무엇이 비밀유지협약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밀유지협약에 해당하는 조항의 내용 정도는 공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소한 월 단위로 어떠한 백신이 도입되는지 정도는 공개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밀유지협약에 해당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를 공개하고 사안을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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