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막을 내렸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한국의 갯벌’을 포함해 자연유산 5건, 문화유산 28건이 새롭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도시’는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1,000건이 넘는 세계유산 가운데 이제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삭제된 것은 2007년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영양 보호구역과 2009년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에 이어 이번 리버풀까지 단 세 건뿐이다.
‘리버풀, 해양 무역도시’는 18~19세기 대영제국의 부두 건설과 항만 경영의 기술을 보여주며 세계 무역 항구도시의 탁월한 사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결정문에는 신규 건축 사업이 예정돼 있으니 세계유산의 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관리 방법을 잘 시행하라고 명시돼 있었다. 해당 국가가 등재 결정문의 요구 사항을 잘 이행하는지는 이후에 계속 검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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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보존 관리에 관해서는 2006년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돼왔다. 2012년 36차 위원회는 리버풀 부두 개발 계획에 대한 극도의 우려와 함께 만약 개발 계획이 시행되면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하겠다는 내용을 결정문에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리버풀처럼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재되면 의무적으로 보존 현황 보고서와 함께 지적된 위험 사항을 제거할 적절한 계획을 제출하고 위원회의 검토·승인을 받아야 한다. 영국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보고서를 냈지만 결국 등재 17년 만에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세계유산은 전 인류가 함께 소중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등재 취소는 국적에 상관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결정이 리버풀의 역사적 가치 보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염려된다. 또한 신규 개발이 세계유산 삭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역 주민과 개발업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충분히 인지했는지 확인하고 세계유산보다 개발을 선택했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상세히 알아봐야 할 것이다.
리버풀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유산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애초 해당국이 제시한 보존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로 판단한다. 우리도 보유한 15건의 세계유산을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등재를 준비 중인 유산에 대해서는 제시하고자 하는 약속의 실현 가능성과 발생 가능한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고 모든 참여 주체가 공유하고 동의하는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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