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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 세금, 어떻게 올려보냈나

[문화재의 뒤안길] 조행일록

19세기 후반 전라도 함열 현감이던 임교진이 배를 이용한 세곡 운송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 ‘조행일록’. /사진 제공=국립해양박물관




1862년 6월, 지금의 전북 익산인 전라도 함열 현감으로 부임한 임교진은 세금으로 거둔 곡식(稅穀·세곡)을 중앙정부로 올려 보내는 일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세곡을 물길 따라 운반하는 것을 ‘조운(漕運)’이라고 하는데 임교진은 그해 11월부터 조운 준비에 착수했다. 주변 8개 고을에서 거둔 쌀과 콩 1만 3,000석을 12척의 배에 실었다. 조운선은 1863년 3월 15일 익산에서 출항해 서해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 5월 2일에 한양에 도착한다. 풍랑을 만나 좌초되기도 하고 한강에서는 모래턱에 걸려 고생하는 통에 배는 규정보다 보름 이상 늦은 터다. 한양에 도착한 후에도 처리가 지연돼 십 수일이나 발이 묶였지만 무사히 세곡을 납부한 후 6월 2일 함열로 돌아온다.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임교진이 쓴 일기 ‘조행일록(漕行日錄)’의 발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임교진은 조운 담당 관리로서 업무의 시작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기록해뒀다.

조운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돼 고려시대에 행정적 체계를 갖췄고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계속됐다. 조운은 조세와 직결돼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일이었기에 행정절차 등에 대한 체계적 규정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제도만으로 실제 운영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다. 다행히 임교진의 조행일록 덕분에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조운 과정의 다양한 모습들이 확인된다.

배가 출항할 때 물길이 거친 곳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돼지를 바치는 일이 기록돼 있는데 실제 침몰선에서 돼지머리뼈가 나오고 있어 흥미롭다. 당시 조운선이 난파된 곳이나 물길이 거칠고 위험하다고 지목된 곳이 오늘날 대표적인 수중 문화재 발굴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세기 후반 전라도 함열 현감이던 임교진이 배를 이용한 세곡 운송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 ‘조행일록’. /사진 제공=국립해양박물관


조운행정제도와 관련해서는 연해의 지방 군현에서 교대로 물길을 안내해 조운선 운항의 안전을 지켰고 다양한 공문을 주고받으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것도 알 수 있다. 난파된 선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법령과 현실의 괴리, 이에 따른 해당 지방관과의 갈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기도 하다. 한양에서 세곡을 납부할 때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던 사실도 재미있다.

조행일록은 조선시대 조운 준비부터 납부까지 모든 과정과 바닷길과 선박 운용 방법을 상세하게 전해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정창운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홍보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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